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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윤의 '섬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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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윤의 '섬을 걷다'

강제윤의 '섬을 걷다'

   
▲ 강제윤의 섬을걷다

티베트 여행기를 펴내고 나서 편지를 보낸 뒤 1년여 만에 다시 편지를 씁니다.
불쑥 도착한 편지처럼 삶은 자주 뜬금없기도 합니다.

내가 뭍에 살다가 보길도로 돌아간 것은 1998년 봄이었습니다. 그때는 눈치도 못 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귀향한 첫날부터 나는 다시 고향을 떠날 것을 예감하고 있었습니다. 그 봄, 나는 벗에게 편지를 썼었습니다.

“사람은 돌아오기 위해 고향을 떠난다고 하던가요. 하지만 나는 다시 돌아온 고향에서 고향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내 여정의 끝이 이곳이 아닐 것을 압니다. 귀향이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시도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고향은 결코 물리적인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고향이란 내가 태어나 자란 시간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그러므로 고향은 결코 실재하는 곳이 아니며 귀향이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에 불과합니다. 이제 나는 또 어디로 불어 가게 될까요.”

그것은 시참(詩讖)이었을까요. 세월이 흐른 지금, 나는 다시 보길도를 떠나 길 위에 서 있습니다. 집도 절도 없는 떠돌이로 4년을 살았습니다. 목수학교를 다니고, 티베트를 다녀온 잠깐의 시간을 빼고는 내내 섬들을 걸었습니다. 한 섬을 버린 뒤에야 모든 섬을 얻었습니다. 서원을 세운 것은 섬에 살던 무렵부터였습니다.

‘언젠가는 이 나라의 모든 섬들을 걸어보리라.’
한국에는 4400여개의 섬이 있습니다. 그 섬들 중 유인도는 500여개. 10년 계획으로 한국의 사람 사는 모든 섬을 걸어갈 예정입니다. 그동안 100여개의 섬을 걸었습니다. 섬을 걸으며 때로는 스스로와 대면하고 때로는 섬의 노인들을 만나 지혜의 말씀들을 듣고 배웠습니다.

대륙이 하나의 섬인 것처럼 아무리 작은 섬도 섬은 그 자체로 하나의 대륙입니다. 곁에 있어도 같은 섬은 없습니다. 오랜 세월 섬마다 고유한 문화와 전통이 이어져 왔습니다. 하지만 외래문물의 유입으로 많은 섬들이 원형질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나는 멀지 않은 시간에 이 나라 대부분의 섬들이 사라질 것을 예감합니다. 이미 많은 섬들이 육지와 연결되었습니다. 다리가 놓이면 섬은 더 이상 섬이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는 배를 타고 섬으로 가는 마지막 세대가 될지도 모릅니다.

끝내는 소멸해 버릴 섬들, 섬의 풍경들. 섬을 걸으며 그 마지막 모습을 기록했습니다.
100여개의 섬을 걸으며 얻은 사유와 풍경과 이야기들을 묶었습니다. 섬 순례 그 첫 번째 책입니다. 이 상실의 시대에 작은 위안이로도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2009년 1월 길 위에서 강제윤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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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감각 바른언론-완도청해진 www.wandonews.kr
입력:200901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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