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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청해진신문 10대뉴스2012 청해진신문 10대뉴스 2012년 새감각 바른언론-청해진신문이 선정한 10대뉴스는?... 1. 2014년 완도 해조류박람회 '국제행사' 승인 세계 20개국 참가 기업관 150개 부스 운영 [청해진신문]건강의 섬으로 각광받는 전남 완도에서 2014년 세계 최초의 해조류박람회가 열린다. 완도군은'바다 속 인류의 미래, 해조류를 만나다'란 주제로 준비한 '2014 완도 해조류박람회'가 최근 기획재정부에서 국제행사로 승인 받았다고 밝혔다. 2014년 4월 11일부터 31일간 전남도와 완도군이 공동으로 주최할 해조류박람회는 완도항과 해변공원, 장보고유적지 일대에서 열린다. ----------------------------------------------- 2. 김영록 후보 56.04% 지지로 당선 44,085표 획득, 19대 재선에 성공 [청해진신문]4월12일 오전 중앙선관위 발표된 제19대 국회의원 해남완도진도군 선거구 당선자로 청해진 완도출신 김영록 후보가 44,085표를 해남,완도,진도에서 골고루 획득하여 56.04%의 압도적 지지로 당선되었다. ---------------------------------------------------------------- 3. 수억~수십억 횡령 여수시, 완도군청 압수수색 완도군, 감사원 통보결과 해당직원 검찰고발 [청해진신문] TV 및 중앙언론, 광주전남 언론 보도에 따르면 검찰이 수억~수십억원대 공무원 공금횡령 사건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광주지검 해남지청은 18일 완도군 재무과 사무실에 수사관을 보내 회계 관련 서류 등을 압수했다. 이날 압수수색은 완도군 공무원 C(37·여)씨가 2년여간 공금 5억원을 빼돌렸다는 감사원 감사에 따른 것이다. 완도군은 감사원의 감사결과를 통보받고 재무과 공무원 C씨를 검찰에 고발했다. --------------------------------------------------------------- 4. 청산도 일주도로 한국의 경관도로 52선 선정 국토해양부, 현지답사와 전문가 평가 거쳐 [청해진신문]완도군에 따르면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인 전남 완도군 청산도의 일주도로가 국토해양부 선정 '한국의 경관도로 52선'에 선정됐다. 국토해양부는 1년 52주 경관도로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전국 지자체별 추천을 받은뒤 현지답사와 전문가 평가 등을 거쳐 52선을 선정했다. 국토해양부의 홍보책자와 브로셔에 소개된 청산면 군도10호선은 '청산도를 안내하는 길'이라는 제목아래 영화 '서편제', 드라마 '봄의 왈츠' 촬영지가 접해있어 봄부터 가을까지 청산도를 찾는 여행객들이 줄을 잇고 읍리지석묘, 구들장논, 신흥해수욕장, 진산갯돌밭, 지리해수욕장 등을 천천히 안내해주는 길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5. 뒤늦게 공로패 받은 이부남 완도군산림조합장 노화고등학교 구희태 교장, 학생들과 학부모 감사의 뜻 전달 [청해진신문]이부남 완도군산림조합장은 지난 2월1일 조합장실에서 전남도의원으로 재임시절 지역학교의 발전을 위해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뒤늦게 공로패를 전달받아 지역민의 칭송이 자자하다. 제8대 전라남도의회 의원으로 활동한 바 있는 이 조합장은 노화고등학교 구희태 교장의 방문을 받았다. 구 교장은 “이 조합장께서 도의원으로 활동하면서 다목적강당의 신축을 위해 전남도교육청에 다목적 강당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끈질기게 예산 지원을 요청한 결과로 훌륭한 시설을 준공하여 학생들의 소망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고 고마움을 전하며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감사의 뜻을 담은 공로패를 뒤늦게 전달한 것. --------------------------------------------------------------- 6. 적십자완도지구협의회 최우수협의회 상 수상 완도장날 1,300여명에게 떡국봉사 호평 [청해진신문]대한적십자사 완도지구협의회가 2월21일 광주전남지사 강당에서 20개지구협의회에서 최우수협의회 상을 수상했다. 봉사하는 마음을 가진 "천사들의 모임"이라는 닉네임을 얻은 대한적십자사 완도지구협의회는 이도심 지구 협의회장과 회원 및 가족들이 한마음이 되어 완도장날인 20일 주민 1,300여명에게 떡국봉사를 벌여 칭송이 자자하다. 적십자 회원들은 누군가가 나를 위해서 작지만 적은 정성을 베푼다면 그것을 받는 사람은 이유는 몰라도 먼 훗날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봉사의 마음이 생길 것이라며 봉사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 7. 완도금일수협 8.2% 잉여배당 조합원들 싱글벙글 구택종 조합장 흑자경영, 전국 상위권조합 청신호 [청해진신문]완도금일수협(구택종 조합장)은 구, 완도군수협 파산으로 파생된 조합원의 충격을 완화하고 조합원들에게 8.2% 잉여배당하는 흑자경영으로 전국 상위권조합으로 청신호가 켜졌다. 완도군 명품 수산물 브랜드가치를 상실하고 타군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고 완도군민의 위상을 높이고자 금일수협이 구,완도군수협을 흡수 통합하여 새롭게 자리매김하여 구택종 조합장은 천신만고 끝에 흑자경영으로 전국단위 상위권 조합으로 진입했다는 것. -------------------------------------------------------------------- 8. 한국전복산업연합회, 세계전복대회 한국유치 쾌거 한국전복을 "참전복"으로 명명, 국제 인증받아 [청해진신문]2015년 세계전복대회가 전남 여수에서 열리게 되었다. 한국유치 성공으로 국제적 위상제고와 수출 확대가 기대되며 전복산업연합회가 지난 2년전부터 유치활동 추진으로 호주세계대회서 위원국 만장일치로 유치에 성공했다는 것. 한국전복산업연합회(회장 최영태)는 지난 6일부터 10일까지 호주 테즈메니아 호바트에서 국제전복협회(IAS ․ International Abalone Society)주최로 열린 제8회 세계전복학술대회에서 차기 대회 유치에 성공했다고 지난 14일 밝혔다. --------------------------------------------------------- 9. 완도군수 부인 항소심서 무죄선고 변호인, 무죄취지 최후변론 재판부 인정 [청해진신문]변호사법 위반혐의로 1심에서 징역 8월에 추징금 1천만 원을 선고받은 완도군수 부인 구희영씨(B대학교수)에 대한 항소심 재판이 12월21일 오전9시30분 광주지방법원 항소심 법정에서 열려 재판장은 원심을 취소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 11월30일 오후4시 열린 항소심 결심재판에서 피고의 변호인은 최후변론을 통해 증인의 일관성 없는 증언과 처음에 1천만원을 주었다고 했다가 돈의 출처와 사용처에 대해 밝혀지자 항소심 법정에서 3백만원을 주었다는 것, 특히, 교수실에서 돈을 주었다는 날은 대학교수인 피고 A모씨가 학교수업이 없었다는 사실과 증인의 친형이 동생의 정식직원 채용에 대한 부탁을 한 사실이 밝혀졌다며, 재판과정을 통해 밝혀진 사실을 보면 피고가 300만원을 받고 청탁했다는 것은 신빙성이 없다며 무죄 취지의 변론에 재판부가 인정 하였다는 것. -----------------------------------------------------------10. 완도경찰, 연고지 수색 적중 살인범 검거 도피범인 3일만에 춥고 배고파 자수 [청해진신문]완도경찰의 연고지 집중 수색이 적중되어 고향마을 야산에 숨어있던 살인범죄 용의자가 굶주림과 추위에 탈진상퇴로 검거 되었다. 지난 19일 오후 7시30분경 전남 완도군 신지대교 임시 검문소에서 근무 중인 경찰 앞으로 50대 남성이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이 남성은 “내가 바로 당신들이 찾고 있는 살인 수배자”라고 밝혔다. 완도경찰은 탈진 상태로 검거해 완도읍 소재 대성병원으로 이송하여 영양제를 공급하고 난 후 경찰서로 이송했다. 검거당시 임시 검문소 경찰에 발견된 살인 용의자 김모 씨(58)는 너무 춥고 배가 고프다는 말만 되풀이했다는 것. 새감각 바른언론-청해진신문 www.wandonews.kr/ www.wandonews.co.kr/ <石泉김용환 대표기자. 동부 서해식기자. 서부 정완봉 기자. 농수산 신재희기자> 입력2013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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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따라 전설따라]보길도(甫吉島)를 찾아마을따라 전설따라 보길도(甫吉島)를 찾아 ▲ 보길도 예송리-石泉 [청해진신문]완도국제항으로부터 12km 되는 거리에 있는 보길도(甫吉島)는 일찌기 고산(孤山)윤선도가 배를 타고 제주도로 가던 중 심한 태풍을 피하기 위해 이곳에 들렀다가 수려한 산수에 매료되어, 이곳 동명을 부용동이라고 명명하고 머물 것을 결심했던 곳이다. 10여년을 머물면서 세연정, 낙서재 등 건물 25동을 짓고 전원생활을 즐겼으며, 그의 유명한 작품 "어부사시사"도 이곳에서 태어났다. 이 섬에는 은빛모래 혹은 자갈밭이 펼쳐진 해수욕장이 세 곳 있어, 여름피서지로도 인기가 있다. 그 중 섬 남쪽에 위치한 예송리 해수욕장은 모래없이 작은 자갈밭이 1.4km나 펼쳐져 있어 천연기념물 제40호인 예송리 상록수림과 어우러져 더욱 아름답다. 아열대성 식물이 무성하게 자라 투명한 바다와 신비스런 조화를 이루며, 특히 보길도로 향하는 남해 뱃길에는 푸른 바다 위에 크고 작은 섬들이 펼쳐져 있어, 아름다움을 더한다. 石泉김용환 대표기자 이 곳에는 또한 고산 윤선도 유적 외에도 조선 숙종 때 우암 송시열의 글씨가 새겨진 바위도 있다. 우암은 세자 책봉 문제로 상소를 올렸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 83세의 노령으로 제주도로 귀양가게 되었는데 도중에 보길도 백도리 끝 바닷가의 병풍처럼 생긴 바위에 탄식의 글을 새겨 넣었다고 한다. 이 바위를 "글씐바위"라고 한다. 그밖에도 예송리 일출과 보족산, 선창리 일몰, 부용리 동백림 등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이다. 고산 윤선도 선생께서 보길도에 18번이나 머무르셨다고 하며, 고려 때 최영장군이 탐라를 토벌하러 가다가 정박했던 곳이 보길도(甫吉島)이다.<石泉> 지금은 甫吉島라고 쓰지만 왕조실록 등에는 甫叱吉島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우암 송시열이 귀양 가는 길에 남긴 시의 바로 옆에다 얼마 후 그 길로 귀양을 가던 김윤경(金允慶)이 송시열의 시를 보고 써놓은 시가 있다. 東國有尤庵翁題詩白島中 동국유우암옹제시백도중 斯文從古厄大老遭時窮 사문종고액대노조시궁 留墨春秋筆泣貂漢海風 유묵춘추필읍초한해풍 孤臣無限感天日照丹衷 고신무한감천일조단충 (해설) 나라에 우암이라고 하는 어른이 있어서 백도에 들려 시를 지었네. 유교문화의 고난과 재액을 따라, 대노 현옹도 조난만은 궁하여서 춘추 필 유묵으로 심사를 밝히니, 거치른 해풍이 눈물로 단비 옷 적시네. 하늘에 해만이 임 향한 단심 비쳐주네. 춘가(春訶) 3- 완도 보길도지역의 낚시하는 모습을 묘사하는 윤선도의 '어부사시사' 중에서 동풍(東風)이 건듣 부니 물결이 고이 닌다 돋다라라 돋다라라 동호(東胡)를 도라보며 셔호(西湖)로 가쟈스라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압뫼히 디나가고 뒷뫼히 나아온다 ● 甫吉島 섬구성 : 본섬1(보길도), 부속섬1(예작도) ● 면적 : 33.32㎢(부속섬포함) 400여년이 지난 지금, 옛시인 고산(孤山) 윤선도를 만나러 보길도를 찾았다. 세상에 곧은 마음을 전하고자 했으나 돌아온 것은 외로운 유배생활 뿐이었던 고산(孤山)윤선도. 그에게 보길도(甫吉島)는 고독함까지도 감싸 안아주는 그만의 이상적인 사회, 이상향(理想鄕)이 아니었을까. 한 때는 정치인으로서 난정을 바로잡고자 상소를 올렸으나 오히려 유배되고, 왕명으로 복직되었어도 중상모략으로 또 다시 유배생활을 했던 윤선도. 결국은 속세를 벗어나 은둔생활을 하려 제주도로 가던 중 풍랑을 피해 잠시 머물게 된 보길도의 아름다운 풍광에 반해 그 곳에 눌러앉게 된다. 특히 은둔 중에 지은 <어부사시사>,<오우가> 등 주옥편의 작품을 남겨 국문학에 큰 획을 그은 윤선도는 세연정, 동천석실, 낙서재 등 그가 사랑한 그만의 이상적인 사회, 이상향(理想鄕), 보길도에서 생을 마감한다. 필자 石泉은 400여년이 지난 지금, 옛시인 고산(孤山) 윤선도를 만나러 보길도를 찾았다. ▶ 두 아들의 죽음과 오랜 유배생활 보길도(甫吉島)라는 아름다운 섬에서 시나 읊고, 무희들과 노닐며 신선 놀음을 한 사람아닌가? 고산(孤山) 윤선도에 대해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간혹 이렇게 치부하기도 한다. 하지만 험한 세월을 보낸 것으로 치면 윤선도의 인생도 그리 녹록치는 않았다. 물론 그의 인생이 잘 뻗어나갈 때도 있었다. 고산 윤선도는 1587년 지금의 서울 종로구 연지동에서 종3품을 지낸 윤유심의 차남으로 태어나 광해군 4년 진사시에 급제, 정계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또한 왕자의 스승으로서 경학, 천문, 지리, 문학 등 여러 분야를 통달한 그였었다. 그러나 이내 집권당의 난정을 주도한 정치인들을 고발, 탄핵하는 상소문을 올려 유배를 가게 된 것. 그것을 시작으로 20여 년에 가깝게 세 차례나 유배지를 떠돌아야만 했다. 삭탈관직도 그에겐 낯선 일이 아니었다. 가장 그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것은 어린 나이에 급제한 영특한 둘째 아들의 죽음이었다. 뿐만 아니라 귀양에서 돌아오는 길에 막내 아들의 죽음 소식을 접하게 된다. 두 명의 아들을 잃은 슬픔은 그에겐 치유할 수 없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난정을 고발하는 상소를 올리며 곧은 성품을 정계에 쏟아 부었지만 그에게 돌아 온 것은 오랜 유배 생활과 두 아들을 잃은 절망감이었다. 어쩌면 윤선도는 오래 전부터 그의 이상을 채워 줄 그만의 이상적인 사회, 이상향(理想鄕)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노론도 소론도 없는 외딴 섬에서 변심하지 않을 자연을 벗 삼아 그간 받은 상처를 치유하고 싶었는지도. ▶은둔의 최고지, 동천석실 “거그 올라갈라믄 쉽지 않을 것인디잉~” 보길도 청별항 근처에서 전복을 파는 아주머니의 말대로, 동천석실에 오르는 길은 쉽지 않았다. 도로에서부터 동천석실까지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천천히 걸어 올라가면 어른 걸음으로 20여분 정도. 하지만 동천석실에 다다르자, 커다란 바위가 지키고 있다. 그 바위 위에 올려진 동천석실. 그야말로 은둔지로서는 최고지가 아닐까 싶다. 윤선도는 동천석실이 보길도 최고의 절경이라 격찬하기도 했다는 것. 바위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렸는지 매듭지어진 밧줄이 드리워져 있다. 매듭을 잡고 천천히 바위를 하나하나 밟고 올라서자 드디어 동천석실이 모습을 드러낸다. 자그마한 정자. 기대했던 것보다는 작고 수수했지만 동천석실에서 내려다 본 부용동의 모습은 막혔던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듯 넓게 펼쳐져 있다. ▶바위 위에 지어진 동천석실 산중턱의 바위 위에 지어진 정자로 전망이 좋다. 왜 고산(孤山)윤선도가 동천석실을 최고의 절경이라 했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동천석실은 오르는 길 못지않게 내려가는 길도 좋다. 오를 때보다 더 천천히 내려가다 보면 풀벌레 소리, 바람이 나뭇잎들을 흔들어 대는 소리, 햇살이 나뭇잎 사이사이를 통과해 들어오는 모습 등 자연이 온전히 내 것이 된다. 누가 먼저 돌을 쌓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소원을 비는 돌탑도 눈에 띈다. ▲ 보길도 세연정 ▶윤선도가 돌 하나하나에도 이름을 붙여 주며 애정을 쏟은 세연정. 윤선도와 보길도를 이야기하자면, 세연정을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다. 세연정은 자연 속에 만들어진 비밀정원 같은 곳이다. 세연(洗然)이란 주변의 경관이 물에 씻은 듯 깨끗하고 단정하여 기분이 상쾌해지는 곳이라는 의미이다. 과연 세연정에 들어서니 동대와 서대를 지나 연못 사이에 고즈넉하게 자리하고 있는 세연정의 모습이 마음을 잔잔하게 이끈다. 고산(孤山)윤선도는 세연정을 사이에 두고 양옆에 자리한 연못, 세연지에 배를 띄워 놓고 시를 읊기도 하고, 무희들의 노니는 모습을 감상하기도 했다고 한다. 세연정에는 윤선도가 사랑한 칠암(七岩)이 있다. 돌 하나하나에도 이름을 붙여주는 그의 감수성이 엿보인다. 그 중 혹약암은 세연지 계담에 있는 칠암 중의 하나로 이 바위는 '뛸 듯하면서 아직 뛰지 않고 못에 있다'는 뜻이다. 이는 마치 힘차게 뛰어갈 것 같은 큰 황소의 모습을 닮은 바위라하여 이름 붙여졌다. 세연정 곁에 자리한 노거수의 뿌리가 오랜 세월을 짐작케 한다. 혹약암은 윤선도가 이름 붙인 칠암 중의 하나이다. 세연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놀라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자연 속에 어우러진 정원임에도 불구하고 과학적인 원리가 적용되었기 때문이다.세연정에는 쌀쌀한 날씨에도 따뜻하게 지낼 수 있도록 불을 땠다고 한다. 세연정의 가장자리 부분은 일반 정자와 다름없이 나무이지만 가운데 부분은 불을 때도 타지 않게끔 되어있다. 이밖에도 판석보는 흐르는 시냇물에 제방을 막아 논에 물을 대는 원리를 이용하여 세연지에 물을 가두기 위한 시설로 일명 굴뚝다리라고도 부른다. 무희들이 노닐었다는 동대와 서대는 세연정 가까이에 있는데 특히 서대는 나선형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무희들이 춤을 추다 보면 어느새 나선형의 길을 따라 꼭대기에 닿았다고 한다. ▶그의 생애 마감한 곳, 낙서재 낙서재는 윤선도에게 있어서는 보길도 생활의 시작과 끝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보길도에 정착하면서 가장 먼저 지은 살림집이 바로 낙서재이다. 낙서재는 책을 읽기 좋은 곳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원래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낙서재는 그 터만 덩그러니 남아있었지만 최근 복원된 낙서재를 만나 볼 수 있다. 윤선도가 보길도에 와서 제일 처음 건축한 낙서재, 이곳에서 그는 생을 마감했다 낙서재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동천석실이 자리한 산이 펼쳐지고 마을의 논밭도 아기자기하게 보인다. 낙서재에서 책 읽기를 좋아했다는 윤선도는 1671년 이 곳에서 숨을 거둔다. 그가 사랑한 보길도에서 생을 마감한 그는 행복했을까.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예송리해변 검고 납작한 돌들이 예송리 해변에 펼쳐져 있다. 멀리 작은 고깃배가 수평선 위를 장식하고 햇살이 바다 표면에 반사돼 눈이 부시다. 딱히 윤선도 유적지라 알려지지 않았지만 오랜 세월 보길도에 머물렀던 윤선도가 예송리 해변에 와서 사색에 잠기지 않았을까하는 상상을 해본다. 고산(孤山)윤선도, 왜 하필이면 보길도에 눌러앉았을까. 원래 은둔의 목적지로 삼아두었던 제주도로 향해도 됐을텐데. 그는 폭풍우를 피하기 위해 잠시 들른 이 곳에 마음을 빼앗겨 버린 것이다. 보길도는 화려한 절경을 지닌 섬은 아니지만 수수하고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여인네처럼 마음이 끌리는 섬이다. 보길도(甫吉島)에 머물다보면, 고산(孤山)윤선도가 왜 보길도와 사랑에 빠졌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된다. <石泉김용환 대표기자> ▶石泉 김용환 대표기자는 전.전라남도관광협회 이사, 전.광주매일 완도군주재기자, 완도문화원 운영위원, 완도군번영회 이사, 법무부 범죄예방위원 완도협의회위원 등을 역임하고, 현재 김미역 북녘보내기운동본부 감사, 나드리고속관광주식회사 대표이사, 서울 시민일보(전국부 호남취재)부국장, 청해진신문 대표기자(발행인), 완도군바르게살기운동 감사, 국제관광전문학사, 초당대학교 행정학사, 전남대경영대학원 수료, 법무부범죄예방전문위원 수료, 호텔종사원자격증, 문체부 국내 및 국외여행 안내원 자격증, 사회복지사2급, 주산3단, 보육교사자격증, 성폭력상담사, 가정폭력상담사, 사단법인 전국지역신문협회 교육담당부회장, 극동방송 완도운영협의회 부회장 등에 봉사하고 있다. 새감각 바른언론-청해진신문 www.wandonews.kr/ www.wandonews.co.kr/ 입력 201203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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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십자완도지구협의회 최우수협의회 상 수상적십자완도지구협의회 최우수협의회 상 수상 완도장날 1,300여명에게 떡국봉사 호평 ▲ 적십자 떡국봉사 [청해진신문]대한적십자사 완도지구협의회가 2월21일 광주전남지사 강당에서 20개지구협의회에서 최우수협의회 상을 수상했다. 봉사하는 마음을 가진 "천사들의 모임"이라는 닉네임을 얻은 대한적십자사 완도지구협의회는 이도심 지구 협의회장과 회원 및 가족들이 한마음이 되어 완도장날인 20일 주민 1,300여명에게 떡국봉사를 벌여 칭송이 자자하다. 적십자 회원들은 누군가가 나를 위해서 작지만 적은 정성을 베푼다면 그것을 받는 사람은 이유는 몰라도 먼 훗날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봉사의 마음이 생길 것이라며 봉사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한편, 광주전남지사에서 사회봉사 유공으로 대한적십자사 총재상을 재무 송연숙(장보고봉사회)씨, 사회봉사 유공 공로패를 정란(완도봉사회)씨, 우수홍보부장 표창을 홍보부장 제갈광식씨 등이 각각 수상해 완도군의 위상을 높였다.<石泉김용환 대표기자> 새감각 바른언론-청해진신문 www.wandonews.kr/ www.wandonews.co.kr/ 입력20120228-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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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泉칼럼-허위사실 적시 언론사의 손배 책임石泉칼럼 허위사실 적시 언론사의 손배 책임 ▲ 石 泉 [청해진신문]지난 2008년 전남지역 김종식 완도군수와 최기상 전 완도고등학교 교장에 대한 허위사실을 공연히 적시한 기사 보도에 관련해 손해배상에 따른 소송이 법원에 접수됐다. 대법원의 확정판결로 징역 6월에 집행 2년을 선고 받고 집행유예 기간중에 있는 완도신문이 김종식 군수와 최기상 전 교장의 손해배상 청구로 재판결과에 따라 위자료를 지급해야 할 처지에 내몰렸다. 김 군수는 확인되지 않은 허위 사실을 출판물에 게재해 군민들로부터 오해를 받아 정치적인 손해가 컸으며, 정신적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며 5,000만원의 위자료를 청구했다. 또한 최기상 전 교장은 장학금 지급과 관련해 사실과 다른 기사를 역시 신문에 보도해 명예로 사는 교사에게 정신적 피해를 주어 이로 인해 학교를 옮겨야만 했다. 최 전교장은 41년간 교직생활에 정년퇴임식도 하지 못한 채 교단을 떠나야만 했다며 역시 5,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해 줄 것을 법원에 청구했다고 밝혔다. 이에 법원의 1,2,3심에서 허위사실 적시로 명예훼손죄가 인정되어 실형이 대법원에서 선고된 만큼 완도신문은 법원의 배상판결이 결정되면 불가피하게 위자료를 지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전국지역신문협회 세미나 강의에 나선 한국언론재단 A사무총장(언론학박사)은 지난해 중앙일간지의 보도로 인해 피해를 입은 피해자가 대법원의 무죄 확정판결 이후 손해배상청구에 따라 각각의 신문사는 1억원씩을 배상하라고 판결된 사례가 있었다며 무죄추정원칙에 따른 기사를 보도해야 한다며 주의를 촉구했다.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를 한 경우에 그것이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으로서 그 목적이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인 때에는 적시된 사실이 진실임이 증명되면 행위에 위법성이 없고, 나아가 증명이 되지 않더라도 행위자가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던 경우에는 위법성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언론사의 명예훼손 관련 법원 판결에 따르면 행위자가 적시한 사실이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는지는 적시한 사실의 내용, 진실이라고 믿게 된 근거나 자료의 확실성과 신빙성, 사실 확인의 용이성, 적시로 인한 피해자의 피해 정도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야 한다. 또 행위자가 내용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하여 적절하고도 충분한 조사를 다하였는가, 진실성이 객관적이고도 합리적인 자료나 근거에 의하여 뒷받침되는가 하는 점에 비추어 판단하여야 한다. 최근 의정부지법 2011. 6. 30. 선고 2010가합1958 판결(확정)에 따르면 A,B 등의 제보로 기자 C이 K에 관한 기사를 작성하여 보도하였는데, K가 허위 기사의 제보 및 게재행위에 의하여 자신의 명예가 훼손되고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고 하여 제보자 A,B 등, C기자, 발행인 J를 상대로 위자료를 청구한 사안이다. 피해자인 K와 관련된 기사 부분이 모두 진실에 반하므로 J는 정정보도할 의무가 있고, K의 성명이 기사에 명시되어 있지는 아니하나 표현 내용을 종합하여 보면 K에 관한 것으로 특정할 수 있고 기사의 제보 및 게재로 인하여 K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저하됨으로써 K의 명예가 훼손되었다. 이에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J는 언론사의 발행인 겸 C의 사용자로서, C는 기사 작성자로서, 나머지 A, B 등은 제보자로서 각자 K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한편, 허위사실 적시로 명예훼손 판결이 대법원으로부터 확정된 피해자인 전남 완도지역 김종식 군수와 최기상 전 교장은 완도신문이 지원받고 있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에 가압류를 해놓은 상태로 언론사의 책임과 민사배상에 따른 법원의 본안 소송 판결에 그 귀추가 주목된다. <石泉 金容煥 -청해진신문 대표기자, 시민일보 전국부 부국장, 완도군번영회이사, 완도군바르게살기운동 감사, 나드리고속관광(주)대표이사, 김 미역 북녘보내기운동 감사, 초당대 행정학사, 성화대 국제관광전문학사> 새감각 바른언론-청해진신문 www.wandonews.kr입력2011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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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容煥이 만난사람-이도심 회장金容煥이 만난사람-이도심 회장 대한적십자사 완도지구협의회 이도심 회장 봉사하는 마음을 가진 천사들의 모임 필요한 곳이면 도서지역도 마다않는 회원들 ▲ 대한적십자 완도지구협의회 도시락 및 구호품 전달 [청해진신문]누군가가 나를 위해서 작지만 적은 정성을 베푼다면 그것을 받는 사람은 이유는 몰라도 먼훗날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봉사의 마음이 생길 것이다. 혹은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지금 봉사하는 사람들은 그 마음을 이해하리라 생각한다. <石泉> 봉사하는 마음을 가진 "천사들의 모임"이라는 닉네임을 얻은 대한적십자사 완도지구협의회를 찾았다. 이도심 지구 협의회장과 서영주 봉사관장을 비롯한 단위봉사회원과 가족들이 한마음이 되어 지난 6월11일(토) 전남 완도군 완도읍 장좌리 장도 주변 바닷가에서 참여한 회원들은 단합된 모습으로 국토대청결운동으로 쓰레기 청소를 말끔히 하는 보람된 하루를 보냈다. 전국적으로 실시하는 국토대청결 운동에 동참하여 주민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지난 4월19일(화)복지회관 1층에서 소년소녀 가장 100가정에 전달할 반찬을 오전9시부터 모인 적십자 회원들은 구슬땀을 흘리며 사랑을 듬뿍 담아 만들었다. 4월20일(수) 복지회관 5층 강당에서 대한적십자봉사회 완도지구협의회 이도심회장과 임순애 지사협의회부회장,고문, 서영주 봉사관장님, 신미경사무장, 협의회임원과 13개 단위봉사회장단이 섬에서 까지 참석한 2분기 운영회의를 마쳤다. 점심식사 후 소년소녀 가장 100가정의 반찬과 적십자구호품을 14개 단위봉사회와 결성식을 할 보길도 봉사회까지 전달했다. "아픔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는 적십자 ~~나눔이 사랑입니다"라고 회원들은 말한다. ▲ 이도심 완도지구회장 대한적십자사 완도지구협의회 이도심 회장에 따르면 지금은 1분이 아깝고 시간이 많았으면 하지만 그 시간이 주어진다 해도 내가 생각하고 있는 모든 것을 다 할 수가 없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쉬움만 많이 남는다고 말한다. 이도심 회장은 현재의 주어진 일들부터라도 열심히 한다면 아쉬움보다는 기쁨이 가득하리라 생각합니다. 봉사는 시간이 남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로 할 때 시간을 만들어 베푸는 것이 아닐런지요! 라며 고령의 나이에도 봉사에는 국경이 없다고 밝힌다. 완도군의 굵직한 행사에는 빠지지 않는 적십자회원들은 지난 2010년4월 슬로시티 청산걷기대회를 기념하기위한 본지가 주최한 국립공원과 함께하는 슬로시티 청산도 石泉사진전시회에 23일간 매일 같이 나와 자원봉사를 하여 관람자 대표자서명만 1,500명이라는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특히 제갈광식 홍보부장이 사진전시회 KBS TV 인터뷰에 나와 적십자 회원들의 자원봉사 활동이 전국의 방송을 타기도 하여 완도군의 위상을 높였다. 또한, 완도지구협의회 부회장(오춘엽)과 총무(양영실)홍보부장(제갈광식)은 지난해에 이어2011년 4월16일(토) 완도항 여객 터미널에 나와 오전8시부터 홍보와 안내 봉사를 했다. 2011년 완도 청산도 슬로우 걷기축제가 4월 말까지 열리는데 완도군 자원봉사센터에서 각 단체별로 봉사를 하여 주민들의 칭송이 자자하다. 전국의 수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한 가운데 광주적십자 회원과 울산적십자 회원도 만나 격려도 해주고 적십자는 하나 한마음이라는 것을 느끼며 보람된 봉사를 하였다. 완도지구협의회 임원들과 함께 회원들은 2011년 3월17일(목) 오전 9시부터 대신리에 있는 완도전문요양원을 시작으로 청해요양원,성광요양원,생수의집,늘푸른집,고금요양원을 방문하여 어르신들과 따듯한 손길로 온정을 나누며 행복한 나눔을 실천하는 봉사를 하였다. 2011년 2월28일(월) 복지회관4층 회의실에서 그동안 봉사에 노고가 많은 우수회원들이 표창을 받았다. *제일봉사회 서은지, 고금봉사회 장화자, 금일봉사회 윤기희, 노화봉사회 정태임 회원이 봉사회 광주전남지사협의회장 표창을 수상했다. *완도봉사회 최은숙이 봉사회 중앙협의회 의장 표창을 수상하고 *청해봉사회 배향례, 완도봉사회 이현자 회원이 광주,전남지사회장 표창을 수상했다. *주도봉사회 이순자 회원이 대한적십자사 총재 표창을 * 김상님 고문이 사회봉사유공장을 수상해 완도군의 위상을 높였다. *우수단위봉사회 표창은 금일봉사회와 약산봉사회가 각각 수상을 하였다. 2011년 1월10일(월) 완도읍사무소옆 주차장 5일장터에서 바람이 불고 추운 날씨에 봉사회원들은 아침부터 준비하여 따끈한 떡국을 만들어 5일장에 오신 어르신들과 장터 상인들에게 사랑과 정성을 담아 떡국봉사를 했다. 적십자사 봉사회 완도 지구협의회장(이도심)과 지사협의회 부회장(임순애)와 단위봉사회 회원들은 2011년 1월 5일(수)복지회관에서 소년 소녀 가장(8가구)에게 반찬을 만들어 전달했다. 완도 지구협의회봉사회원 모두가 올 한 해는 토끼처럼 큰 귀를 쫑긋거리며 주변에 아픈 소리를 소중히 듣고 위로하며 많이 사랑하고 봉사할 것이다. 2011년 한해도 대한적십자사 완도지구협의회 임원과 13개 단위봉사회는 겸손과 낮은 마음으로 화합과 사랑 나눔을 실천하며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봉사자가 되길 약속하여 건강의 섬 완도의 미래는 밝게 나아갈 것이다.<石泉 김용환 대표기자> ▲ 슬로시티 청산도 석천 사진전시회를 마치고 적십자회원들 ▲ 슬로시티 청산도 석천사진전시회 새감각 바른언론-청해진신문 www.wandonews.kr입력 2011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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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 김용환씨, 시민일보 전국부 부국장으로 새도전언론인 김용환씨, 시민일보 전국부 부국장으로 새도전 시민을 위한 진정한 NGO신문 종합일간 중앙지 22일 발령 ▲ 石泉 김용환 언론인 청해진신문] 본지 발행인(石泉 김용환)은 12월22일자로 시민을 위한 진정한 NGO신문 종합일간 수도권중앙지 시민일보 전국부(호남취재본부) 부국장으로 겸직 발령받아 호남권(전남, 광주, 전주)취재업무에 들어갔다. 수도권중앙지 전국부에 겸직하게 된 김씨에 따르면 서로가 스스로를 ‘정(正)’이라고 주장하기에 바빠 ‘합(合)’을 이끌어 내는 작업에 너무나도 소흘한 한국의 정치판이 매우 소모적이라고 밝혔다. 하나의 사건, 하나의 정책에 대해서 각각의 신문사가 풀어내는 보도논리가 완전 다르다. 각각의 신문사는 하나의 독립적인 언론 기관으로서, 특정한 이념이나 관점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독자도 자신의 입맛에 따라 그것을 만족시키는 신문을 보는 것은 소비자로서의 자연스러운 권리이다. 그러나 그 관점에 유연성이 없어서는 곤란하다. 많은 사람들이 보통 하나의 신문을 본다고 했을 때 너무나도 치우친 기사는 위험하다. 더군다나 편향된 이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 중립적인 기사를 원하는 독자들은 2개의 신문을 모두 읽어야 하는 수고를 들여야 한다. 신문을 사랑하는 독자이며 소비자로서 균형 잡힌 기사를 짧은 시간에 읽고 싶은 욕구는 철저하게 무시된다. 언론은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와 견줄만한 위치에 있다고 하여 제4의 기관이라고도 한다. 국가적 공권력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정책과 행정에 대한 날카로운 견제를 보장하기 위해 정부 기관으로부터 독립을 시켜 놓았다. 그렇게나 높은 권위와 막중한 역할은 국민의 신임이 바탕이 되어 양도된 것이다. 기본적으로 언론은 진실을 담아야 한다. 특정한 자신들의 의견을 담기 이전에 공정하고 바른 ‘사실’을 먼저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언론인 石泉 김용환은 부산건국고등학교 졸업, 성화대학교(국제관광학과, 관광전문학사)졸업, 초당대학교(사회복지과, 행정학사)졸업, 전남대 경영대학원 수료, 한국언론연구원과 한국기자협회 제15기 기자연수과정 수료. 법무부 보호관찰전문 범죄예방위원 교육과정 등을 수료했다. 주요경력은 전, 전라남도관광협회 이사, 남도일보 및 광주매일 완도 주재기자, 완도군지방행정동우회 자문위원, 완도군재향군인회 이사, 한국자유총연맹 전남완도군지부 청년회장, 한국자유총연맹 전남완도군지부 부지부장, 완도군 군민헌장 개정 자문위원, 사)전국지역신문협회 광주전남협의회장, 완도군민의 날 군민의 상 심사위원, 완도경찰서 폭력예방위원, 장보고축제추진위원회 위원, 완도로타리클럽 회원, 해양엑스포완도군유치위원(포르투칼해양엑스포현지방문), 구도회 회원, 은초록 효 실천연구원 회원, 전라남도 행정서비스헌장 심의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사단법인 전국지역신문협회 중앙회 조직담당 부회장, 사)완도군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 감사, 나드리고속관광(주)대표이사, 사)완도군노인회 자문위원, 사)완도문화원 운영위원, 사랑의 김미역 북녘보내기운동본부 감사, 유)청해진신문 대표이사, 한국국악협회 완도군지부 자문위원, 성폭력상담사, 가정폭력상담사, 사회복지사(2급), 보육교사(2급)로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주요 상훈사항은 1999.9.28 문화관광부장관표창, 95.9.26 전라남도지사표창, 92.9.28 전남관광협회장표창, 91.1.21 광주전남재향군인회표창, 90.10.21 완도경찰서장감사장, 01.11.2 완도경찰서장감사장, 93.5.15 한국자유총연맹완도군지부 공로장, 00.6.17 구도회감사패, 98.9.12 전남대경영대학원장감사패, 98.2.27 전남대학교총장표창패, 01.4.26 완도군장학위원회위원장감사패, 03.3.12 완도군노인회감사장, 04.1.14 완도군청년회감사패, 완도군장애인연합회감사패, 05.12.30 전라남도표창, 06.6.20 사단법인전국지역신문협회공로패, 07.6.20 청산도가고싶은섬추진위원회공로패, 07.12.5 법무부범죄예방위원 해남,완도,진도지부협의회장 표창장, 2010,11,군외면 노인의날 공로패 등을 수상했다. 새감각 바른언론-청해진신문 www.wandonews.kr 입력2010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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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세상을 보는 빛과 소금의 역할사 설 세상을 보는 빛과 소금의 역할 언론인에게는 사명감이 자존심이다 ▲ 石 泉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조사결과에 의하면 온라인의 발달되어 출현으로 인터넷신문이 출현되어 종이신문 구독률이 1999년에는 70%에 육박했지만 점차적으로 그 수치가 줄어들어 2008년에는 35%를 기록했다. 신문 구독률의 감소에는 인터넷의 영향도 크며 더불어 조사한 신문의 신뢰도도 1998년 40.8%를 기록했던 것이 2008년에는 15.0%로 하락한 것을 보면 두 수치의 상관관계를 의심해보게 된다. 우리사회는 좌파의 이념과 우파의 이념이 서로 완전 대칭이라는 파격적인 논리와 함께 특정한 어떤 것이 왼편에 혹은 오른편에 있나부터 판가름 하는 현재의 분위기에 질려버렸다. 서로가 스스로를 ‘정(正)’이라고 주장하기에 바빠 ‘합(合)’을 이끌어 내는 작업에 너무나도 소흘한 한국의 정치판이 매우 소모적이다. 하나의 사건, 하나의 정책에 대해서 각각의 신문사가 풀어내는 보도논리가 완전 다르다. 예를 들어 지난 1월15일자 완도지역신문 “완도신문의 여론조사, 신문보도 어떤 걸 믿어야 하나”의 보도를 보면 완도군수 후보 지지도 여론조사 내용에 완도투데이와 타임스 및 나주지역신문 전남저널 인용보도 기사를 비교하며 본문에 “실제로 이번 두신문의 여론조사 보도내용을 보면서 여론조작의 결과가 우리에게 주는 문제의 심각성과 교훈을 얻게 했다”.고 자신의 신문이 최고인 양 단언했다. 그러나 사실은 2월12일자 광주일보와 KBC TV 광주방송의 공동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현,완도군수는 57.1% 지지도로 보도되었다는 사실을 살펴보면 완도신문의 보도행태는 편집국장 친구인 모후보가 군수후보로 나섰기 때문에 편들기 식 보도가 아니냐하는 주민 K모씨(62세, 완도읍 군내리)의 주장처럼 ‘이상한’ 보도행태가 논란을 사고 있다. 또한, 정상의 군청간부를 알콜중독자로 매도하는 보도를 수차례나 거듭하여 주민들이 들고 나서는 사실과 다른보도 및 완도모고가 전국에서 제일 꼴찌라는 엉터리기사, 모업체가 일본서 트럭 두 대분의 신물질을 수입했다는 허위기사, 군수가 군대친구 부인이 사망해 군행정선 타고 가 위로했다는 허위사실의 엄청난 보도로 인해 일부 피해 당사자들의 고소에 기소되어 벌금형 또는 명예훼손 재판이 현재 법원에서 진행 중이라는 것. 어떤 정책적 논란에 대해 한 신문의 논조를 비추어 판단해보면 그것은 매우 위험하다. 의심의 여지가 없이 절대적으로 재고가 필요하다. 그러나 바로 다른 신문이 갖고 있는 잣대를 들이대면 하루라도 빨리 시행해야 하는 시급한 정책이다. 각각이 가지는 기사의 방향이 너무 일방적이다. 분명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같이 존재 할 텐데, 그것들을 전부 골고루 설명해주는 친절한 신문기사는 없다. 한 정책에 대해 180도 상반되는 성격의 글을 비교해보면서 읽다 보면, 서로 다툰 형제가 어머니께 자신의 입장만 늘어놓는 상황과 같은, 다 큰 어른들의 유치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그 유치함을 비웃기에는 너무 무섭다. 각각의 기조가 너무 강하고 일면적이기 때문에 성숙함을 자랑하는 어른이라도 한 개의 신문만 보면 그것의 압도적인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다. 각각의 신문사는 하나의 독립적인 언론 기관으로서, 특정한 이념이나 관점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독자도 자신의 입맛에 따라 그것을 만족시키는 신문을 보는 것은 소비자로서의 자연스러운 권리이다. 그러나 그 관점에 유연성이 없어서는 곤란하다. 많은 사람들이 보통 하나의 신문을 본다고 했을 때 너무나도 치우친 기사는 위험하다. 더군다나 편향된 이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 중립적인 기사를 원하는 독자들은 2개의 신문을 모두 읽어야 하는 수고를 들여야 한다. 신문을 사랑하는 독자이며 소비자로서 균형 잡힌 기사를 짧은 시간에 읽고 싶은 욕구는 철저하게 무시된다. 언론은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와 견줄만한 위치에 있다고 하여 제4의 기관이라고도 한다. 국가적 공권력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정책과 행정에 대한 날카로운 견제를 보장하기 위해 정부 기관으로부터 독립을 시켜 놓았다. 그렇게나 높은 권위와 막중한 역할은 국민의 신임이 바탕이 되어 양도된 것이다. 기본적으로 언론은 진실을 담아야 한다. 특정한 자신들의 의견을 담기 이전에 공정하고 바른 ‘사실’을 먼저 제공해야 한다. 핵심 요소는 세가지다. 한 기사에 넷 이상의 투명한 취재원을 활용해야 하고 다양한 관점을 소개해야 하며 넷 이상의 이해당사자를 활용하고 반영해야 한다는 것은 그만큼 사실 확인에 충실하라는 것이다. 반면 온갖 양념의 이해관계가 얽혀 아전인수적 행동을 일삼고 있는 한국언론은 국민이 부여한 막중한 역할에 대한 사명감과 겸손함 대신 시스템적 결여만 문제삼는, 정작 본인들의 문제를 모르는 오만함에 빠져있다. 초등학생들도 다 아는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 라는 명언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의 현대인을 마음을 시원하게 관통한다. 지금의 행동을 보면 한국 언론은 그 아픔에 너무 무디다. 아니 쓰라림을 느끼고나 있는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자기 인식이다. 언론인의 생명은 ‘사실’을 많은 사람들에게 진실되게 전달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세상을 보는 빛과 소금의 역할이다. 육체적인 피해를 입히는 것만이 가학이 아니다. 오염되고 일방적인 사고를 선정적인 방법으로 계속 주입시키는 것. 이게 더 무서운 폭력적 행위다. 새감각 바른언론-완도청해진www.wandonews.kr 입력 201003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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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한국교회 설교는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가?특별기고 - 정장복 교수 (장로회신학대학교 실천신학 교수) 한국교회 설교는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가?설교사역의 위기요소 분석과 그 대안의 모색▲정장복 총장(한일장신대학교) ▲ 정 장 복 교수 -한일장신대 총장 서언: 백년의 역사를 회고하면서 느꼈던 감격과 새로운 다짐들은 벌써 시들기 시작하여 그 함성과 발길을 찾기 힘들다. 교회의 갱신이 필연코 있어져야 한다는 젊은 결단들은 다 시들어져가고, 오히려 교회의 무기력이 이 땅위에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도덕성의 퇴보와 윤리의 실종현상은 이 민족의 25%를 점유하고 있다는 기독교의 무기력함이 얼마나 극심한지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 시대의 정신세계는 언제나 물질문명의 발전과 반비례한다. 과학의 기술과 경제적 발전이 거듭되는 세계일수록 그 땅의 엄격했던 도덕성과 정신적인 전통성은 퇴색되기 시작한다. 여기에 우리의 한국의 세계도 예외가 되지 못한 채 심각한 진통을 앓고 있다. 특별히 이 땅의 엄격한 유교의 윤리사상과 접목되어 활발하게 행군을 계속했던 우리의 기독교는 어느 시대에서도 경험하지 못했던 심한 딜렘마에 빠지기 시작한다. 이 땅의 교회의 구성원들도 평범한 시민으로서 삶의 향상과 현대의 문명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너무나 타당한 말이다. 그리고 거기에 설교자도 이 시대에 사는 인간이기에 문명의 이기(利器)를 십분 활용하면서 현대의 특권을 누릴 권리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상대적으로 시들어져 가는 설교사역의자의 고유한 정신(Ethos)과 사려 깊은 노력의 결핍이 문제이다. 즉 청교도의 신앙에 뿌리를 두고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던 소명의 다짐과 거기에 따르는 설교자의 철저한 생활에 너무나 심한 변화가 일고 있다는 문제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종으로서의 그 고결한 땀과 눈물이 서서히 식어져 가고 이 시대의 혼탁한 물결에 휩싸이지 아니하려는 몸부림이 사라져가는 현실이다. 그러기에 우리 설교의 단에 불이 꺼져가고 있다는 지적이 일기 시작한다. 그토록 좋은 음향장치를 했고 화려한 장식이 가득한데도 오늘의 설교가 무기력하다. 이 민족의 가슴에 그 유창한 설교가 스며들지 못한다. 설교자를 통하여 전달되어져야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외면을 당하고 있다. 좀더 솔직한 표현을 한다면 오늘의 교인들은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예배당을 찾아갈 수밖에 없으나 오히려 설교 때문에 깊은 실망을 안고 돌아오는 경우가 적지 아니함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이런 현상을 가리켜 설교학계에서는 [설교의 위기]가 도래했다는 진단을 내리게 되고 적신호를 켜게된다. 세계의 어느 교회에서나 발생했던 이러한 설교의 적신호를 보면서 자기점검을 했던 설교자는 살고 그렇지 못한 설교자는 설교의 몰락과 임종이라는 비극의 종점에 이른다. 2. 성찰을 요구하는 시대적 변화 회고해보면 한국의 기독교는 이 민족이 고통의 눈물을 흘리던 시절에 들어와 한 세기를 넘긴 종교이다. 이 땅에 기독교가 상륙하기가 무섭게 바로 이어진 한일합방의 민족적 비극이 발생되었다. 그때부터 식민지 교회로서의 울부짖음이 하나님을 향하여 터지기 시작했으며, 순교를 부르는 핍박의 마수(魔手)가 한국교회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리고 일제의 극심한 착취는 계속되어 이 땅의 가난은 극심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비극이 끝나기가 무섭게 남과 북으로 나누인 이 민족은 동족살상(同族殺傷)이라는 더욱 무서운 전쟁의 참화를 겪어야 했다. 이 무섭고 부끄러운 역사의 장이 끝나자 우리의 민족은 이 땅의 공산화를 막기 위한 갖은 노력을 기울였고 곧 등장한 군사정권과 함께 가난의 탈피를 가져오는데 함께 하였다. 그리고 터무니없이 등장하여 칼을 휘두른 정권이 인권을 짖밟을 때는 심각하게 저항하는 기록을 남기면서 [백담사의 귀향]이라는 희귀한 기록을 남기기도 하였다. 사실 우리의 지난 한 세기는 한일 합방의 비극에서부터 80년대의 군사정치의 횡포에 이르기까지 숱한 변혁을 겪어야 했고, 때로는 잔혹한 삶에 시달려야 했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아픔의 역사는 어느 민족에게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러기에 우리의 교회는 어느 민족보다 강한 종말론적 신앙을 가지고 뜨겁게 주님을 부르짖었다. 그리고 말씀에 깊은 뿌리를 둔 신앙의 불을 피우면서 그의 재림을 고대하였다. 한국교회의 한 사가(史家)는 이 때의 신앙적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종교의 특징은 , 철저하게 내세적이요 현실 부정적이면서도 가혹할 정도로 경험적이고 감각적인 생태에 접속하게 되어 있어서, 축복과 열복의 상징인 내세의 천국이 여기, 이 땅에서 그 종말의 아련한 대망의 자리에, 물리적으로 체험 가능하게 이르기를 줄기차게 갈망하는 데 있었다. 지난 한 세기를 돌이켜 보면 한국교회는 이상과 같은 연속된 불운의 늪에서 헤매이는 이 땅의 백성들에게 소중한 피난처이었고 도피성이었다. 그러기에 이 피난처에서 들려지는 말씀은 위로와 힘이 되었고 삶의 방향을 지배하는 막중한 능력을 발휘하였다. 더군다나 그 말씀이 단순히 인간의 발상이나 지혜에 근본을 두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옷을 입었을 때 어느 누구도 감히 그 말씀을 향하여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오직 감사와 감격으로 일관하면서 눈물을 흘렀다. 그리고 거기에는 순종하는 길만을 걷기를 스스로 다짐하는 무리들로 행렬을 이었다. 자신의 건강에 이상이 와도 병원보다는 손쉽게 주의 종을 찾았고, 사업이 무너지는 아픔을 당하여도 예배당의 문전을 찾아 엎드려 기도를 드렸으며, 정치와 사회로부터 상처를 받아도 오직 말씀으로 위로 받기를 바라는 성도들로 예배당은 가득히 채워졌었다. 이러한 신앙으로 가득한 교회에서는 설교사역은 절대권위를 부여받게 되고 그 강단의 주역은 언제나 거룩한 권위와 반신적(半神的)인 존재로 군림을 한다. 그리고 메시지의 구성이나 전달에 별로 어려움을 겪지 않고서도 특유한 음성과 태도와 영성의 권위만을 가지고서도 우뚝 솟은 교회의 주인으로 등장하는 것이 교회사에 나타난 일반적인 현상이다. 바로 이때의 설교자는 쉽게 카리스마적인 존재로 등장하여 절대영향을 주는 위치를 쉽게 확보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설교의 준비를 위한 큰 부담 없이 자신의 경험이나 예화의 진열로 설교의 시간을 메꾸어도 아무도 그 설교자에게 도전장을 던지는 교인들은 없게된다. 이러한 교회의 양태를 가리켜 흔히들 혼돈과 수난의 교회라고 이름하며, 설교자에게는 이러한 교회의 강단이 오히려 안일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자신도 모른 사이에 계속적으로 그 세계에 머물고 싶어하는 타성을 갖게 된다. 그러나 21세기의 문전에 도달한 오늘 한국 교회는 달라진 시대의 철로 위를 달리고 있다. 다시 말하면 달라진 세대가 교회의 주역들이 되었고 그 주역들의 눈과 귀는 과거의 것이 아닌 전혀 새로운 시대의 것이다. 어둡고 지루하고 눈물로 얼룩진 불행한 어제의 사연들을 경험하기를 거부하는 그들이다. 그들은 높은 교육수준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립하려한다. 경제적인 면에서는 비록 상대적 빈곤을 느끼는 경우가 있어도 그들은 스스로를 극빈자로 말하기를 거부하면서 중산층의 세계에 머무는 자신이라고 말하고 또 그렇게 희망한다. 비록 달동네의 삶을 지속하는 현실이더라도 고임금을 손에 쥐면서 내일에의 희망은 언제나 밝게 꾸며간다. 어둡고 비겁한 정치가들을 과감히 바꾸는 주권을 이제는 행사하면서 절대권위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날카로운 비판의식을 가지고 시(是)와 비(非)를 분별하는 능력을 행사하기 원한다. 뿐만 아니라 맹종의 신앙보다는 합리적인 신앙을 추구하기를 희망한다. 그들은 무식한 설교자보다는 지성적인 설교자를 원한다. 그들은 신선하고 창의적이며 역동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설교자 앞에서는 겸손히 고개를 숙이고 지루하고 아무런 변화도 없이 강단을 지키는 설교자에게는 경멸의 눈길을 보내는 모습을 서슴없이 나타내고 있다. 거기에 더하여 눈길을 끌고 있는 것은 50년대와 60년대를 살아오던 세대마저 그토록 간절하게 지켰던 종말론적인 신앙들을 상실한 채, 먹고 살만한 오늘에 대한 애착이 대단히 깊은 상태이다. 이들의 신앙은 이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재림이 연기되기를 바라는 인간심성을 보이고 있다. 결국 이들도 과거 지향적이고 틀에 박힌 설교에 대한 환멸을 느끼면서 새로운 시대에 있어져야 할 신선한 설교자를 찾고 오늘의 수준을 이끄는 설교를 추구한다. 3. 한국강단을 침몰시키는 요소들 시대의 변천이나 개인의 발전이 어떤 단계에 이르든지 인간은 빵으로만 살수 없는 피조물임을 스스로 알고 한국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기 위해서 아직껏 교회를 찾고 있다. 특별히 하나님 신앙은 그 표현에 있어서의 문제는 있었으나 "기독교나 천도교만이 소유한 것이 아니라 한국인 전체가 공유한 아득한 옛부터의 신앙임"을 인정할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사역은 이 땅의 종교문화로부터 거대한 위치를 차지고 있다. 이런 종교문화에 발판을 둔 한국 기독교인들의 특별한 심성은 신의 말씀을 전하는 메신저에 대한 대단한 존경을 갖게 되고 주어진 메시지에 관하여는 최우선적인 경의를 표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여기서 깊은 주의를 요하는 것은 첨단의 문화에 승선(乘船)한 현대의 기독교인들은 선포된 메시지에 맹종적인 경청이나 추종을 하지 않고 나름대로의 판단을 거쳐 소화 내지 거부를 한다는 현실이다. 이제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목이 쉬도록 외친 오늘의 설교자 앞에 앉아 있는 성도들이 그 설교에 만족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현대 커뮤니케이션의 이론대로 전달한 메시지가 의도한데로 회중들에 의하여 공유(共有-Sharing)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솔직히 설교자가 자신이 전한 메시지에 대한 메아리가 최소한 다음의 것들이기를 바라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수 가 없다. "목사님, 오늘의 설교는 저의 생애에 소중한 결단을 가져오게 했습니다." "목사님, 오늘의 설교에서 깊은 은혜와 감명을 받았습니다. " "목사님,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저의 고민하여 온 문제의 해답을 받았습니다." 아직도 이러한 주옥같은 반응을 받은 설교자들이 한국의 땅에 분명히 있다. 그리고 그들의 교회가 성장을 거듭하면서 생명이 차고 넘치는 말씀으로 가득한 현장을 본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교회 강단에서 위와 같은 응답을 듣는다는 것은 설교자의 희망사항일 뿐 실질적으로 설교자의 귀에는 좀처럼 들리지 아니한 것들이다. 오히려 설교자의 가슴을 너무나 아프게 하는 다음과 같은 속삭임이 설교자의 귀에 훨씬 쉽게 들려온다. "오늘도 예화의 진열장으로 설교가 끝이 나고 말았군" "또 자신의 경험과 세상 이야기를 나열한 채 그 아까운 시간을 보내고 말군"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한 자장가에 불과 하기에 나는 잘 수밖에 없었어" "이제는 지겹고 실증만을 불러일으키는 설교가 되어 더 이상의 인내는 힘이 들어" 여기서 우리의 설교자들은 깊은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 무엇 때문에 오늘의 설교현장은 이렇게 슬픈 반응을 받게 되며 침몰되어가는 조각배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가? 분명코 까닭이 있다. 까닭이 있기에 문제가 발생되었다. 그 문제들은 지금껏 설교자를 반신적(半神的)인 존재로 절대화 시켜온 우리의 강토에서는 언제한번 시원스럽게 파해쳐보지를 못하였다. 유교의 유산으로 너무나 오랫동안 이 땅에서 지속해온 계층의식은 설교자의 모순과 이탈을 감히 지적하지 못하도록 하여왔다. 이것이 바로 수직문화의 비극이요 더 낳은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였다. 그 결과는 오늘의 설교를 위기의 상황으로 몰고온 독소들을 오히려 더 확산시키게 되었고 오늘의 설교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무엇이 우리의 성스러운 설교의 사역을 병들게 하는 요소들인가? 1). 설교 전문인을 위한 교육과정의 시급성 교육이란 천부적인 특수한 재능을 가진 자에게는 그것을 더욱 개발하여 빛나게 하는 것이며 그렇지 못한 자에게는 후천적인 노력을 통하여 어느 한계에 도달하게 만드는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교육이란 모든 분야의 필수적인 것이며 초석이 되는 것이다. 특별히 특수분야의 경우는 그 교육은 훈련의 성격을 동반하면서 전문인으로서의 기능과 위치를 확보해주는 중요한 역활을 감당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달해야 하는 사명자들은 누구나 함부로 감당할 수 없는 특수분야의 전문인들이라는데 아무런 이의를 달지 않는다. 이 말씀의 사자들은 인간사회가 지향하는 고도의 기술을 요구하기 전에 신과의 깊은 연접(Link)과 그것을 지속하는 높은 영성(靈性)의 지속을 요구한다. 그리고 거기에 더하여 필수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터득할 수 있는 기본 실력을 쌓아야 하고 그 말씀을 전달하는 방법과 기술에 대한 교육과 훈련을 받아야 한다. 더욱이 설교를 듣는 회중들의 교육수준이 고도화 되어가는 오늘에 설교자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설교의 이론과 실제 과정의 성실한 이수는 그 시급성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본다. 다음은 1925년 강도학(講道學)을 펴내는데 역자로 참여했던 고려위(高麗偉)는 오늘 우리가 반듯이 음미해야 중요한 부탁을 남긴바 있다. 福音은完全無缺한眞理이나其傳하난方法의巧拙이잇셔聽衆을感분激昻케하난 差等이不無하니講道의效果를獨히聖神의게만依하고其法을少許도學習하지 아니하니함은妄信이오愚見이라 2). 극도에 달한 "나"의 등장 전통적으로 설교사역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오늘의 회중들에게 그들의 언어로 운반하는'말씀의 사자'로 이해되어 왔다. 이러한 관점에서 칼빈이 설교자를 하나님의 위탁을 받은 대사(Ambassador)로 이름하였다. 그리고 칼 발트도 설교를 정의 할때 "하나님이 선택한 설교자를 통하여 인간들에게 들려운 하나님 자신의 말씀"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전통적인 설교자에 대한 견해는 오랫동안 기독교의 강단에서 지속해왔다. 그래서 설교는 언제나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해석하고, 삶의 장에 적용해주어야 하는 당위성을 가지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맥을 이은 한국 교회에서도 처음부터 그렇게 가르쳐왔다. 한국의 신학교육의 초창기 부터 설교학을 가르쳤던 곽안련 교수는 "설교인은 청중에게 향하여 마치 '내 말을 들으라 내가 아는 바를 너희에게 말하겠다.'와 같은 태도"는 절대 금물임을 강조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을 받은 평양신학교 출신 설교자들은 자신들이 받은 설교의 교육을 실현하는데 최선을 다하였다. 그러나 오늘의 설교자들은 전혀 다른 세계를 달리고 있다. 설교학 교육의 수준이 경험담을 들려주는데 끝난 시절의 피교육자들인 이들은 신언(神言)과 인언(人言)을 분간하지 못한 경지 속에서 설교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우리의 귀에 들려져야 할 설교문장은 예를 들면 분명히 다음과 같은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말의 뜻은 바로 이런 말씀입니다. 예를 들면 이러한 경우 (간단한 실례-예화)를 가르킨 말씀입니다" 또는, 우리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향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는 명령을 하고 계십니다. 그 뜻은 이러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러한 사례의 경우입니다." 이처럼 모든 설교의 문장의 주어는 성삼위(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으로 분명하게 구성되고 그 뜻을 밝혀주고 적용을 해주는 것이 설교의 본질이다. 이럴 때 만이 메시지의 주인이 뚜렷하고 설교자가 단순히 도구(Instrument)의 역을 감당함이 분명해진다. 이러한 신언의 부각은 주어를 중심하여 엮어진 인도 유럽말의 경우는 조금도 지장을 받지 않고 너무나 당연하게 지켜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언어는 술어중심의 언어로서 주어가 너무 많이 생략된다. 더욱이 일인칭 주어는 아예 생략하여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정감을 더해주기에 주어 없는 문장의 활용이 너무 보편화되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오늘의 설교자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다음의 종결어(終結語)에서 너무나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그로 인한 설교의 탈선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충분히 입증을 해 주고 있다. '축원합니다.'' 믿습니다' '원합니다.''바랍니다' '생각합니다' '느낍니다' '기원합니다' 이상에서 본 종결어의 주어는 어떤 경우도 설교자 (나) 자신이다. 여기서 외국의 설교자와는 달리 한국의 설교자는 너무나 자신의 등장을 극심한 경지에까지 끌고 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결과는 설교내용이 설교자의 말과 경험과 지식과 그가 즐겨쓰는 예화로 완전히 채색된다. 그리고 회중들로부터 '아멘'만 유발시키면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된다는 착각에 빠지고 있다. 이러한 현장에서 너무나 뚜렷이 나타난 현상은 막상 전해져야 할 하나님의 말씀은 설교자의 말에 가리워져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다는 사실이다. 말씀의 주인이 나타나지 않은 설교, 그것은 가장 심각한 설교의 위기를 몰고온 위급한 요소라 아니할 수 없다. 3) 한국의 설교자와 설교 횟수의 축소 개신교는 말씀이 육신이 되신 그리스도에 촛점을 둔 종교임에 틀림이 없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나 말씀으로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 교회도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의 선포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 말씀이 신선한 내용과 타당한 논리를 수반하지 않고 시간을 메꾸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외쳐진다면 거기에는 새로운 문제가 등장하지 않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동일한 인간에 의하여 동일한 메시지가 반복되어진다면 말을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에게 막중한 부담을 안겨주게 되며 바라는 효과성은 지극히 제한을 받게된다. 우리의 한국교회의 설교자가 감당해야 하는 설교의 횟수와 그 양은 실로 지탱할 수 없는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 한 주간을 두고 보면 주일 낮설교를 비롯하여 주일밤, 수요일 밤, 그리고 매일의 새벽과 금요철야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설교자는 설교의 홍수 속에 휘말리고 있다. 최소한 주일 낮과 밤, 그리고 수요일밤 만을 계산해도 일년에 165회의 설교를 해야하고 10년이면 1560편의 설교를 해야 하는 실정이다. 과연 이런 짐을 한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인가? 한 설교자가 소유하고 있는 언어와 지식은 한계가 있는데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늘 신선하고 역동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면 실로 부끄러움에 가까운 사건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의 어느 교회를 가보아도 한국 교회처럼 설교만을 의존하는 예배가 이렇게 빈번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든 형편이다. 그리고 설교의 역사에 아무리 위대한 설교가라 하더라도 수 천편의 설교를 남겼다는 기록은 아직 읽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우리의 설교현장만은 이 엄청난 사역을 진행시키고 있는 참으로 기이한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어쩔 수 없이 수 없는 반복을 거듭해야 하고 거기에 더하여 기계적인 습성, 그리고 만성적인 언어의 유희를 수반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럴 때 교회의 강단은 생명력을 잃게 되고 설교는 몰락의 벼랑을 향하여 서서히 달려 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기에 설교의 횟수를 줄이는 것이 설교자와 회중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길이라고 본다. 주일의 낮예배 만은 하나님과 인간에게 부끄러움 없는 반듯한 설교를 하도록 하고 주일밤과 수요일 밤의 기도회 등은 모두 성경강해 또는 계획된 성경공부를 비롯한 효과적인 프로그램을 개발 할 필요가 있다. 이럴 때 설교는 기다림 속에서 경청을 하게 되고 새롭고 신선한 말씀으로서 회중들의 심령에 심어 질 수 있다. 교회의 예배가 진정 목사의 설교에 성패를 건다는 것은 너무나 무모한 일이다. "기독교 신앙을 전하는 데 있어서 독보적 존재로서 우상화되어 왔던 설교는 이제 그 왕관을 벗을 필요가 있다"라고 설파한 베델(Theodore Wedel)의 말에 새삼스럽게 귀를 기울여 음미해 볼 필요를 느낄 시점에 와 있다고 본다. 4). 설교의 복제문제와 개발의 필연성설교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매일 받아먹었던 만나와 같은 것이다. 그때의 만나는 어제의 것을 오늘 다시 먹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안식일을 제외한 모든 날들은 그 날 받아 그 날 먹어야 했던 가장 신선한 양식이었다. 생각하면 오늘의 설교도 언제나 신선한 만나와 같은 양식으로 회중들의 심령에 넣어 주어야 하는 것이 너무나 타당한 일이다. 그러기에 설교자는 한 주간 내내 말씀의 전달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 몸부림을 치면서 메시지를 받고, 그 말씀의 깊은 뜻을 헤아리기에 자신의 시간을 아낌없이 내놓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그 말씀에 먼저 용해되는 감격을 경험하고 난 후에 회중들 앞에 서서 그 감격의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 교회는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하나의 이변이 발생하고 있다. 그것은 설교집의 출판이 당연한 경쟁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목적이 뚜렷하지를 아니하다. [나는 이렇게 설교를 했다]는 자랑인지 아니면 단순히 자신의 설교를 기록화 시켜 교인들에게 다시 읽히도록 하는 목적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그러나 두 가지의 뜻하지 않은 부작용을 수반하는 경우를 본다. 하나는 동역자 된 설교자들이 그 설교문을 그대로 복사하여 강단에 들고나서는 부끄러운 죄를 유발시키는 것이고, 둘째는 자신이 펴낸 설교를 교인들이 읽고 난 후 어느 때인가 [목사님은 지난번 했던 설교들을 다시 재탕하십니다] 하면서 새로운 실망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필자는 후자보다는 전자의 사건에 더욱 깊은 두려움을 가져본다. 자신이 먹이고 가꾸는 양들을 위하여서 목자는 더 좋은 꼴을 찾아 헤매이는 수고를 해야함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러한 땀을 흘림이 없이 다른 목자가 이미 먹여버린 것을 울 넘어 가져다가 자신의 것인양 내양들을 먹여도 되는 것인지를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런 행위가 습관화되는 날 찾아오는 결과는 참으로 비참한 것들이다. 그것은 자신의 설교능력이 급격히 저하되어 그 회복이 너무 어려운 지경에 이른다는 사실이며, 또 하나는 회중들이 다른 곳에서 듣거나 동일한 설교집을 읽은 경우 조금의 동정도 없이 경멸의 시선을 자신에게 보내게 된다는 사실에 깊이 유의해야 한다. 현대를 달리는 설교자가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교회마다 그들의 환경과 수준과 신앙의 특수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만을 위하여 필요한 양식이 요구된다는 사실이다. 결코 남의 설교를 복사하여 그대로 먹일 수 없는 자신들의 양들임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삯군된 목자는 그 이마에서 땀 흘리기를 거부하고 쉽고 편한 곁길을 즐겨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참 목자는 눈물과 땀을 때로는 피까지 흘리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양들의 먹이를 찾아 먹인다. 홍수처럼 쏟아진 설교집이 오늘의 설교사역에 에덴동산의 과일처럼 등장이 되고 설교자들에게는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 되고 있다. 특별히 자신이 설교를 하려는 본문과 주제를 결정한 후에 설교자의 손이 서서히 남의 설교집을 만지고 그 눈길이 거기에 머물려는 유혹은 참으로 곤혹스러운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참된 설교자는 거기서 과감한 결단을 내리면서 야곱처럼 자신의 환도뼈가 상하더라도 하나님을 붙들고 내 양들이 살찔 수 있는 양식을 달라고 매어달리면서 펜을 잡고 자신의 설교원고에 받아쓰는 과정을 밟아야 할 것이다. 본훼퍼가 조국에 돌아가 히틀러의 칼날을 피하여 지하의 신학교에서 설교학 교수로서 열강을 토하면서 남긴 말이 새삼스럽게 한국의 설교자들을 향하여 들려지고 있다. "설교는 성육신 하신 그리스도 그 자신이다....말씀으로서 회중들 가운데를 걷고 있는 그리스도 그 자신이다." 그렇다 설교자는 오늘 자신의 간절하고 절박한 기도와 땀흘린 준비가운데서 그리스도가 나에게 맡겨진 회중들에게 오셔서 그 가운데 걷도록 해드리는 것이 오늘 한국의 강단을 지키는 설교자의 진정한 사명이다. 5). 설교자의 땀과 피로 적시는 설교[목회의 장(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목회자들에게 던질 때 응답자의 70%가 설교라고 대답을 한다. 이러한 응답은 설교자들의 생활 속에서 그대로 반영이 된다. 그들은 계속적으로 이어지는 설교에 대한 부담을 앉고 살아가는 현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설교자들이 막상 설교준비를 위하여서 내놓은 시간은 30%도 되지 않은 다는데 그 심각성이 내재하고 있다. 설교가 목회의 장에서 70%의 비중을 차지한다면 자신의 시간도 그 정도를 할애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모순을 안고 있다. 설교자는 성령의 손에 잡힌 도구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설교가 수록되어진 녹음기와 같은 단순도구가 아니다. 설교사역은 언제나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전달하는 일이다. 그러기에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기 위하여서는 자나깨나 명령을 기다리고 생각하고 자료를 찾아 헤매이는 것이 생활의 전부가 되어야 한다. 사실 설교의 준비는 끝없는 정성과 준비가 요구되어진 특수한 사역이다. 이런 까닭에 설교자는 남달리 건강한 영성를 가꾸어 영적으로 건강한 호흡을 하는 존재여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터득할 수 있는 지적인 바탕과 성장을 쉬지 아니해야 할 존재이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브라이트 신학교 설교학 교수였던 베켈히머(H. Beckelhymer)의 말을 되새겨 본다. 성공적인 설교란 쉬운 것이 아니다. 설교를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성공적인 설교가 무엇인지조차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설교란 한 인간의 신앙과 정성어린 마음과 언어의 기술과 그리고 지적인 모든 바탕의 최고점을 요구하는 중요한 일이다. 이러한 설교자는 25분의 설교를 위하여 최소한 25시간을 쏟을 수 있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즉 매일의 오전 4시간은 설교준비를 위하여 바치는 설교자여야 한다는 결론이다. 그리고 삶의 장에서 주어진 말씀을 적용할 수 있는 정황을 누구보다 예민하게 감지 할 수 있는 예지의 감각이 추구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한국교회의 설교자들은 심방을 비롯하여 각종행사와 기타의 일에 너무나 많은 시간을 쏟아버리고 피곤한 주말에 설교를 준비한다고 앉아있게 된다. 이러한 설교자에게 시선한 만나가 주어지고 그 말씀의 깊은 의미를 터득 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는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피곤과 졸음의 산실(産室)에서 과연 생명을 깨우치는 설교가 이룩될 수 있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6). 성언이 없는 설교의 범람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려지지 않은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기록되어진 말씀이 설교자에 의하여 현장의 언어로 선포되어지지 않고 해석되어지지 않은데 기인한다. 설교는 설교자의 사상이나 경험이나 유명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종교수필 또는 교양강좌가 아니기에 언제나 기본적으로 봉독되어진 성경의 말씀을 선포하고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이 설교자의 정도(正道)임은 수차에 강조해온 사실이다. 그러기에 진정한 설교자는 자신의 설교현장에 얼마나 많은 회중들이 모여 열광적으로 '아멘'을 연발하는가에 눈을 뜰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충실히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그들에게 들려주었는지에 깊은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의 강단에서는 참으로 부끄러운 설교자의 연출이 속출하고 있다. 즉 설교자가 하나님의 말씀인 본문의 봉사자가 아니라 지배자로서 군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설교자가 자신의 생각과 사상, 그리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와 흥미진진한 예화를 나열한 후에 하나님의 말씀인 본문을 들려주는 현상이 너무나 빈번하게 발견되어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지식과 분석, 또는 경험을 실은 이야기하고 난 다음에 그 경험담에 좀더 튼튼한 신빙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설교가 시작되기 전에 봉독한 본문을 인용하여 본문은 설교자를 위한 하나의 징검다리 역할 이상을 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설교의 현실을 우리의 한국교회에서는 너무 자주 보게된다. 이러한 선상에서 오늘도 설교사역을 감다하고 있는 설교자는 다음의 말에 깊은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메시지의 재원이 시대적인 사건, 문학, 철학, 정치 이데올로기 등이 될 수는 결코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설교자 자신의 경험과 감정까지도 설교의 원천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직 설교의 메시지는 성경에다만 그 원천을 두어야 한다. 여기서 한국의 강단이 인식해야 할 또 하나의 사실은 설교는 단순한 신앙간증과는 너무나 다른 구속력을 가지고 있다는 문제이다. 신앙간증은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자신의 경험과 판단에 기준을 두기 때문에 회중들로부터 공감대만 형성하면 된다는 지극히 한정된 제약을 받는다. 그러나 설교는 그 기준이 그 날의 설교본문에 있다. 그 본문은 설교자와 회중 모두에 의하여 함께 읽혀진다. 거기서 회중들은 그 말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소유한 상태에서 설교자가 그 말씀을 어떻게 선포하고 해석하고 자신들의 삶의 장에 적용시켜주는지를 주시하게된다. 그러기에 설교는 수많은 회중의 감시를 받으면서 본문이 말씀한 범위를 벗어나서는 아니되는 엄격한 제한을 받고 있다. 결과적으로 설교자는 말씀의 주인이신 하나님으로부터, 그리고 그 말씀을 듣기 위하여 설교자의 앞에 앉아 있는 무리들로부터 우선적으로 봉독되어진 말씀의 지배자가 아닌 봉사자가 될 것을 철처히 요구를 받게된다. 7). 물량주의와 기복사상을 심는 설교의 실상 설교는 시대상황에 따라 메시지의 방향이 어느 한편에 치중될 수 있고 또 그러하여야 한다는 당위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시대의 형편이 어떤 위치에 있던지 그 메시지는 하나님을 중심하여 그 나라와 의를 확장해 나가는데 그 기본적인 목적을 두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 메시지의 바른 형태이며 지난 수 천년 동안 설교사역의 주역들은 이 괘도를 지키기에 심혈을 기울여왔다. 그런데 우리의 한국 강단은 이 땅의 종교문화에 너무 극심하게 편승을 하고 있다. 즉 가난을 탈피하고 한을 풀어 풍족한 복을 누리려는 절박한 욕구를 종교에서 채우려는 신앙심을 그대로 수용하는 메시지가 범람하고 있다. 즉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가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회중들의 영과 육과 범사가 잘되어 복을 담아야 할 그들의 창고가 차고 넘치는 길을 알려주는데 주안점을 둔 설교가 너무나 보편화되어 있다. 거기서 다시 한번 한국의 강단이 흔들리고 침몰의 위기를 맞는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이런 결과는 회중의 가슴을 울리고 반성과 회개를 촉구하는 예언적 설교의 현장에는 교인들이 모이지를 아니하고 [축복의 성회],[신유의 성회], [은사의 성회]라는 현수막이 있는 곳에 한국 성도들의 발길이 무수히 몰리게된다. 바로 이런 사연들이 오늘의 설교사역을 어둡게 만들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회중들의 기복위주의 취향에 따라주지 않은 설교자는 외면 당하고 떠나주기를 바라는 지극히 이기주의적인 성도를 양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바로 이것이 기복사상과 물량주의에 촛점을 두고 목이 쉬도록 외쳐온 설교가들이 맞는 자업자득의 현상이다. 8).설교의 내용과 설교자의 삶에 대한 괘리현상필자가 한국교회의 평신도를 대상으로 하여 연구 조사한바 있는 [설교사역자에 대한 평신도의 의식구조 분석]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바있다. "귀하가 아는 설교자들에 대하여 생각할 때 그들의 설교와 삶의 연관성이 어떠하다고 보십니까?" 여기에 대한 응답자의 80.2%가 "완전치는 못하지만 설교대로 살려고 노력한다."고 응답을 하였고 10.3%는 "설교자는 설교하는 대로 생활한다."라고 대답한 바 있다. 이러한 응답의 비율은 서구교회에 비교하여 월등하게 높은 비율이다. 이것은 바로 이 땅이 유교문화의 영향권에서 오랫동안 정착해온 결과로서 도덕성의 강조와 선비의 고결한 인격성에 대한 높은 기대가 그대로 나타난 현상이라고 본다. 문제는 오늘의 설교자들이 가장 고결한 성직인 목사로서 자신이 전달한 메시지를 먼저 실천하는 본을 보이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설교자의 대답이다. 여기에 대한 솔직한 대답은 최근에 들어와 대단히 부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사회에서 실종의 위기에 직면한 윤리와 도덕성이 설교사역자들의 삶과 인격에 의하여 살아나지 못한 채 오히려 심각한 탈선이 여기저기서 발생되고 있다. 성전에서의 살인사건, 밀수에 가담한 목사들의 이름, 그리고 외화낭비에 선두주자로서의 목사의 생활, 외국신학교의 분교를 설치하고 박사학위를 남발하는 주범들로서 신문에 그 이름이 오르내리는 현상은 오늘의 설교사역을 가장 멍들게 하는 치욕적인 보도들이다. 설교자가 이 땅에서 풍겨오던 고유한 상은 남다른 것이었다. 일상생활에 있어서는 누구도 따를 수 없는 헌신적이고 검소한 생활의 주인이었으며 풍기는 인격에 있어서는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고결한 품성과 지식을 소유한 것이 한국의 설교자 상(像)이었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목사는 물질의 풍요를 앞서서 누리는 상류사회의 생활인들로 변화되고 때로는 극소수의 설교자들에 의하여 자신이 외친 메시지와 자신의 삶과 인격과는 무관할 수 있다는 생각을 펼치면서 이 땅의 설교사역을 어둡게 하고있다. 여기서 우리는 한국교회의 설교자들이 "생활하는 집과 말씀의 집"을 따로 지을 때 설교사역에 찾아드는 슬픈 비극적 결과는 실로 엄청날 것이라는데 유의해야 할 것이다. 9). 목회의 수단과 방편이 될 수 없는 설교설교란 기본적으로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설교자 개인의 불편한 심기를 표현하거나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편이 될 수 없다. 설교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발산하는 무대가 될 수 없고 회중을 선동하여 자신의 개인적인 집단으로 만들 수 없다. 그런데 현대의 소수의 설교자들에 의하여 설교의 본래적인 성격이 퇴색되기 시작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지식과 연구의 결핍을 회중들로 보지 못하게 하는 방법으로서 신비주의를 도입하는 사례를 본다. 방언과 예언의 신비한 현상을 유도하여 그것이 말씀 위에 군림하도록 하는 실수를 범한다. 그것만이 아니다. 자신에게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을 향하여 직접적인 지적을 하면서 때로는 위협을 한다. 그리고 자신의 권위를 절대화하여 심지어는 저주를 행하는 모습을 본다. 이럴 때는 마치 설교자가 하나님으로 둔갑한 모습을 자행한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햐 하는 강단은 헌금을 수집하는 무대로 변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을 가리켜 설교가 목회자의 뜻을 펼치는 수단의 방편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때 우리의 목회자들의 사회에서는 부끄러운 이야기들이 오고갔었다. 부흥집회를 위하여 강사를 모실 때 특유한 방법으로 헌금을 많이 하게 하는 강사를 초빙을 하면서 수입을 어떻게 분배한다는 약속을 했어야 하는 시절도 있었다. 생각하면 얼마나 한국교회의 강단이 철저하게 탈선하고 있었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이처럼 우리의 설교가 목회적 수단으로 이용되는 효과적인 이기(利器)로 전락된다면 거기에는 밝은 내일이 있을 수 없다. 오직 어둡고 침울한 장래만이 있을 뿐이다. 언제나 설교는 "은혜의 효율적인 방편으로서 하나님이 정해주신 것"이지 결코 인간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하여 또는 설교자의 정신적 피곤을 풀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진정한 설교는 "인간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 위에서 죽게 하시고 다시 살리신 구속의 역사를 통하여 인간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생명의 선물을 전하는 것"이다. 10). 설교자의 착각적 과신(過信)의 문제인간이란 자신이 행하고 있는 일에 대한 확신을 가질 필요가 있다.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일은 일의 진전에 절대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일정한 일을 수년을 넘게 계속하면 스스로 진전 시킬수 있는 요령과 기술이 터득되면서 전문인의 세계를 달리게 된다. 그럴 때 누구의 추종도 불허하는 자신의 고유한 영역의 성을 쌓게 된다. 설교사역 역시 이상과 같은 이론을 도입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어느 설교자나 자신의 강단에 설 때 자신이 넘치는 모습을 보이고 유창한 설교를 펼쳐나간다. 그 몸가짐에서 그리고 슬슬 쏟아져 나오는 달변에서 회중은 설교자의 전문성과 그 성스러운 직책에 대한 인정을 한다. 그리고 아멘을 연발하면서 그 설교에 심취되는 경우를 본다. 이런 현상 앞에서 어떤 설교가도 자신의 부족에 대한 인정을 좀처럼 하지 않는다. 그러나 설교자의 설교를 비데오에 담아 설교자 자신이 보도록 할 때마다 거의 모든 설교자가 반응하는 다음의 말은 우리가 깊이 음미해 볼 만하다. "저게 나의 설교인가요? 저 정도의 수준에 불과하던가요? 실망인데요." 이 반응의 응답은 바로 자신의 설교가 자신이 생각했던 수준에 미달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 필자가 십 수년이 넘도록 경험해온 설교학 교실에서의 실태는 아무도 자신의 설교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우월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설교자가 없었다. 환언하면 거의 모든 설교자가 착각적 과신의 늪에 빠져서 설교사역을 진행하고 있다는 결론이다. 많은 설교자들이 자신에게 설교향상을 위한 겸허한 노력이 얼마나 시급한지를 모른 채 이어지는 설교를 메꾸면서 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자신도 모른 사이에 어느덧 자신감이 형성하게 되고 드높은 권위의 의자에 앉아 교주적(敎主的) 자세를 취하게 된다는 슬픈 그림을 그리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자연적으로 스스로를 성공적인 설교자라고 자부하게 되는 교만의 자리를 향하게 된다. 평생을 설교학 교수로 살았던 일리온 죤스(Ilion Jones)는 조각가 도발드슨 (Thorvaldsen)의 말을 연상하면서 "설교자가 자신의 설교에 만족할 때 그는 스스로 내리막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라고 갈파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설교자가 자신은 초보단계를 벗어난 완벽한 설교자라고 자랑할 수 있는 시간은 결코 오지 않는다"고 가르치고 있다. 완벽한 설교를 추구하는 설교자는 있으나 완벽한 설교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설교학에서 반복하여 가르치는 말이다. 그런데도 자신의 설교가 최상의 단계에 이른 것 마냥 믿고 더 이상의 발전을 추구하지 않은 착각적 과신의 주인들이 우리의 한국교회에 강단에 너무 많이 서 있음을 볼 때 한국교회의 미래가 지극히 염려되지 않을 수 없다. 진정 설교의 자만과 교만에 빠져 있는 설교자에게는 성령의 도움이 떠나고 다음의 말씀만 그 귀에 들려줄 것이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맺는말: 1960년대 후반에 클라이드 리드(Clyde Reid)에 의하여 설교의 위기 (Empty Pulpit)라는 적은 책이 출판되자 미국의 교회를 비롯하여 수많은 설교자들은 심한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리드는 이 책자를 통하여 지금까지 안일하게 설교의 사역을 감당해 오던 설교자들을 향하여 다음과 같은 대담하면서도 솔직한 도전장을 던진 바 있었다. 여기에서 강단이 비어 있다는 말 (empty pulpit)은 목사가 없는 교회 강단을 의미한 말이 아니다. 오히려 목사가 강단을 지키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좌석에 앉아 있는 교인들이 말 할 수 없이 허전해 하고, 전혀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며 말씀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심각한 곤경에 부딪쳐 있는 오늘의 강단을 의미한다.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에 미국의 강단을 향하여 있었던 이러한 예리한 지적이 전혀 생소하게 들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오늘 우리의 한국교회 강단을 향하여 직선적으로 들려주는 고마운 지적으로 받아드리고 싶은 충동을 더욱 절실히 느낀다. 그 이유는 위에서 지적한 부끄러운 사연들이 오늘 우리 한국의 강단에서 벌써부터 발생하고 있었으며 지금은 오히려 더 심각한 경지에 이르러 '설교의 몰락' 또는 '설교의 임종'이라는 슬픈 비판들이 등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오늘의 한국교회 설교사역은 아직도 건제(健在)한 면이 없지 아니하다. 선진국의 교회에서 볼 수 없는 설교자의 뜨거운 기도가 있고 생사를 걸고 뛰는 목회의 열심이 있는 한국교회이다. 그리고 아직도 순교의 피가 우리의 바닥을 흐르고 선교의 뜨거운 열기가 쉬지 않은 우리의 교회이다. 어떤 땅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심취성이 강한 우리의 성도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아직도 앞에서 열거한 설교의 위기요소에 물들지 않은 맑고 귀한 설교자들이 우리의 한국교회를 지탱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는 세계의 교회역사에 특유한 교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얼마동안 왕성했다가 시들어지는 기록을 역사에 남긴 채 그 명맥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서구교회의 후예가 되기를 거부한다. 세상 끝날까지 부흥만을 지속하는 교회가 되겠다는 이 소박한 소망의 실현을 위하여 이 땅의 목회자들은 자신이 드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바치면서 땀과 눈물을 오늘도 쏟고 있다. 그러나 국민소득의 향상에 기인한 물질만능의 시대적 부산물이 우리 속에 이미 침투해 왔으며 성직의 탈선적 조짐이 심각하리 만큼 대두되기 시작한다. 이때에 설교는 살아있는 불씨의 역을 감당해야 하는데 함께 탈선을 한다면 이 땅의 교회는 소망을 잃게 된다. 그러므로 한국강단의 설교가 침몰되기 전에 최소한 이상과 같은 시급한 요소들에 대하여 엄격한 자기진단과 성찰이 있어져야 한다. 그리고 나타난 위기현상들에 대한 시급한 대책이 마련되어져야 할 것이다. 한편, 정장복 총장(한일장신대학교)은 청해진 완도출신이며 고향마을 청산교회의 종지기 소년이었던 그는 신축 건축헌금으로 거액을 헌금하시고 청산교회 건축설계를 건국대교수(경남 외도 건축물 설계자)에게 부탁하여 무료로 설계까지 지원했다.<石泉김용환 발행인, 대표기자>새감각 바른언론-청해진농수산신문 www.chjnews.kr 입력0201002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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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란 키운 강진청자 재감정 진통분란 키운 강진청자 재감정 진통 공개 재감정에 감정가 합의 못해 전남 강진청자박물관의 구입 청자 2점에 대한 공개 재감정이 시장가보다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에 샀다는 논란에 휘말려 19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이 박물관 운영 주체인 강진군 주최로 열렸다. 이날 재감정은 강진청자박물관이 지난 2007년과 올해에 각각 10억원을 주고 구입한 고려청자들인 참외형 주전자와 정병 실물을 직접 가져다 놓고, 취재진과 고미술품 업계 관계자 등이 참관하는 가운데 구매 가격이 적당한지 등을 재감정 위원들이 논평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재감정에는 학계에선 윤용이 명지대 교수와 문화재위원인 나선화 박사, 고미술품 업계에서는 공창훈 공화랑 대표와 김익환씨 등 4명이 참가했다. 이들 재감정 위원은 지난 5일 문화체육관광부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성윤환 의원이 '고가 구입'의 사례로 거론한 이들 두 청자가 진품이라는 점에서는 이의를 달지 않았다. 중앙언론에 따르면 이들 청자가 공공박물관에서 각각 10억원을 주고 매입할 만한 가치가 있느냐에 대해서는 평가가 뚜렷이 갈렸다는 주장이다. 즉, 윤 교수와 나 박사가 개인과 개인간 거래라면 몰라도, 적어도 공공기관이라면 시장 가격에 비추어 적정한 가격에 매입 협상을 해야 했음에도, 각각 10억원씩이나 주고 구입한 것은 무리가 있다고 주장한 반면, 공 대표와 김씨는 유물에 대한 평가는 상대성이 있는 만큼 10억원이 터무니없는 가격은 아니라고 맞섰다. 양측은 예술품으로서의 가치에 대해서도 미묘한 의견 차이를 보였다. 윤 교수와 나 박사가 두 청자는 "훌륭한 작품이기는 해도 명품 중의 명품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평가한 반면, 공 대표와 김씨는 "명품 중의 명품"이라고 주장했다. 참외 모양 주전자에 대해 윤 교수는 이와 매우 흡사하면서도 보존상태가 더욱 완벽한 고려청자 유물을 다른 박물관이 7천만원에 매입한 사실을 전하면서 논란이 된 청자는 적정 가격이 1억원 미만이라고 말했으며 나선화 교수는 많아야 3-4억원 정도라고 선을 그었다. 중앙언론에 따르면 정병 고려청자에서 대해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벌어졌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이날 재감정은 고가 구입 논란에 대해서는 어떠한 결론도 도출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문제를 국감을 통해 처음 제기한 성윤환 의원실 심재진 보좌관은 재평가위원 선정에 대해서도 문제를 삼았다. 심 보좌관은 재평가 위원 중 한 명을 지목해 참외 모양 주전자의 원소장자인 이모씨와 가까운 관계 아니냐고 따지기도 했다. 결국 이날 재감정은 논란을 가라앉히기보다 외려 그것을 키웠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편, 강진군청 초청으로 이 자리에 참석한 한국고미술품협회(회장 김종춘)는 논란이 된 두 작품 모두 현재 시장에서 유통되는 가격 기준으로 많아야 1억원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이번 논란과 관련한 별도의 기자회견까지 검토하는 등 이번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새감각 바른언론-완도청해진 www.wando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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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선생 5월 주간운세2009 기축년 5월 주간운세 보기 백운선생- ◑저서: 사주학과 한의학 ,사주와 생활철학, 정설사주풀이... ◑집필 기고: 경남매일신문,스포츠조선,내일신문,전국벼룩시장... ◑김정용 (아호: 백운) 1952년 10월 22일생. 1982년 역학계 입문- ◑작명, 사주,운세 등 - 의뢰 전화:011-554-88769 완도청해진-www.wandonews.kr 5월4-10일 쥐 바늘구멍이라도 조기에 수습하지 않으면 큰 바위로도 막아내기가 힘들다. 72년생: 걱정 근심 모두 잊고 맡은 일에 자신의 역량만 발휘하면 별다른 일은 없겠다. 60년생: 정상적인 방법이 통용되지 않을 때는 편법을 동원하는 것도 좋겠다. 48년생: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더라도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니 쉽게 생각하라. 36년생: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고 싶다면 아무 말하지 말고 그냥 지켜보자. 소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일도 시간이 가면서 점점 어려워질 수 있다. 73년생: 제자리를 찾지 않고 남의 자리에서 미적거리면 빈손으로 돌아온다. 61년생: 열심히 일하면서도 시간적인 여유를 낼 줄 아는 것이 지혜롭다. 49년생: 분위기가 고조될 시기가 다가온 상태라면 자신의 위치를 지켜야 이롭다. 37년생: 일이 많으면 남에게 맡기고 그것이 아까우면 잠시 후에 처리하면 된다. 범 원한다면 행동하고 행동하면 얻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74년생: 남을 이겨야 한다는 강박관념보다는 자신을 더 발전시키길 바란다. 62년생: 경거망동하지 않으면 손에 금과를 지닐 수 있으니 작은 것에 연연하지 마라. 50년생: 필요 이상으로 친절이나 호감을 보이는 자는 경계하는 것이 좋겠다. 38년생: 내가 궁금하면 남도 궁금하기 마련이니 마음을 먼저 열어야 편하다. 토끼 거리를 두고 움직일 때와 바짝 붙어서 움직일 때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75년생: 다른 사람에게 의심받을 짓이나 자신 없는 일은 애초에 생각도 하지 마라. 63년생: 유통업자는 거래 물량이 대량으로 이루어지니 많은 이익이 생긴다. 51년생: 일이 공교롭게도 꼬일 수 있으나 가만있으면 금세 해결될 수 있다. 39년생: 사소한 문제로 다투거나 시비가 엇갈려 마음이 불편해질 염려가 있다. 용 보기 좋은 것이 먹기에도 좋은 법이니 이왕이면 다홍치마를 선택하자. 76년생: 부지런한 사람은 한가지라도 더 얻을 수 있으니 멈추지 말고 끊임없이 행하라. 64년생: 대외적인 일로 기운이 상승할 분위기지만 시기하는 사람이 많아 걱정이다. 52년생: 정적이 감도는 곳에서는 숨소리조차 내기 힘드니 약간 부산한 곳으로 옮기자. 40년생: 의미심장한 표현을 하는 것은 좋으나 상대방이 알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뱀 사려 깊은 행동만이 여러 사람을 편하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77년생: 감정표현에 있어서 가장 중효한 것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전하는 것이다. 65년생: 혹시 흐름을 잘못 이해한 건 아닌지 다시 점검해보고 확인해보길 바란다. 53년생: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우면 발을 담그지 말고 막대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41년생: 서운한 마음이 들 때는 그것을 밖으로 표출해야지 속에 두면 병만 생긴다. 말 이성적인 판단이란 객관적인 판단과도 같은 것이니 서두르지 말고 침착히 대응하라. 78년생: 여러 가지로 복잡한 일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은 현자에게 조언을 구하라. 66년생: 한번 마음먹은 일을 일관성 있게 밀고 나가면 알찬 결실이 예상된다. 54년생: 힘차게 약진하고 싶은 마음을 뒤로 하고 내실을 다지는 시점으로 삼아라. 42년생: 소중한 것이 있으면 소문내지 말고 주머니 속에 고이 간직하는 것이 좋다. 양 이미 일어난 사건 자체를 바꿀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아야 악순환을 해결할 수 있다. 79년생: 자신 있는 일이 때마침 떨어지나 의욕만 앞세우다가는 밥그릇 엎지른다. 67년생: 공개석상에서 자신의 의중을 분명하게 밝히는 용기를 가져야 할 때이다. 55년생: 숱한 오해가 발생할 수 있지만 심각하게 생각지 말고 마음을 놓아라. 43년생: 남의 일에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면 좋은 일을 하고도 서로간에 멀어질 수 있다. 원숭이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그것부터 깨달은 후에 행동하라. 80년생: 사고방식이 다르다고 억지로 맞추려들면 시끄러우니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라. 68년생: 어차피 한 배를 탄 사람이라면 잘못을 탓하기보다 덕으로 감싸줘야 한다. 56년생: 남들에게 찬사와 부러움을 받을 일이 생기나 자칫 실속이 없을 수도 있다. 44년생: 모이지 않고 흩어지니 갈무리하고 다독거려야 모든 것이 편하다. 닭 큰 나무에 기대고 있으면 비가와도 두렵지 않고 바람이 불어도 쉽게 쓰러지지 않는다. 81년생: 하고싶은 것을 억제하는 기간이 길어지면 정신적으로 상당히 힘들 수 있다. 69년생: 탄력이 있고 없는 것에 상관없이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57년생: 마음이 흡족한 일이라면 약간의 희생이 있어도 곧장 추진하는 것이 좋다. 45년생: 한 가지 이상의 것을 손에 쥐지 말고 두 가지 이상의 것을 생각하지 마라. 개 한 가지 이상의 것을 손에 쥐지 말고 두 가지 이상의 것을 바라지 마라. 82년생: 마술사의 손짓처럼 거짓이지만 청중을 즐겁게 해주는 일을 마다하지 마라. 70년생: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즐겁고 흥분되는 시간을 만끽한다. 58년생: 급하게 내려오지만 차분하게 착지하면 그간의 어려운 과정은 사라진다. 46년생: 책임감이 강한 사람은 덕을 쌓고 만인에게 존경을 한 몸에 받는다. 돼지 두 가지를 주고 한 가지만 받으면 손해 보는 느낌이 있지만 나쁘다고만 할 수 없다. 83년생: 받을 사람이 많고 줄 것은 정해진 상태니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관건이다. 71년생: 물은 멀리하고 불을 가까이하면 집안에 자그만 경사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 59년생: 현실적인 것만 생각하면 앞으로 나서기 힘드니 다른 것은 생각하지 마라. 47년생: 인망을 얻고자 한다면 눈높이를 낮추는 것이 선행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5월11-17일 쥐 수수한 것을 추종하고 화려한 것을 배척하는 자세를 취해야 할 때이다. 72년생: 해왔던 일이 자신과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 과감하게 바꾸는 것도 좋겠다. 60년생: 오래도록 기울인 공로를 인정받으니 그간의 고생이 헛되지 않다. 48년생: 사업자는 무리한 확장을 피하고 실리를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36년생: 부동산 문제로 고심하는 사람은 현자를 찾아가 조언을 구하면 된다. 소 시야를 넓게 하고 대세를 그르지 않는 사람은 큰 물줄기를 따라서 올라간다. 73년생: 사람으로 인한 실망감은 다른 것으로는 채우기가 매우 부담스럽다. 61년생: 정신적인 부분에 구멍이 생길 수 있으나 미리 예방하면 별일 없다. 49년생: 어디서 먼저 시작할 것인가를 정확하게 정한 후에 일을 시작해야 한다. 37년생: 엉킨 실타래를 풀려는 노력은 가상하지만 아무래도 방법이 문제다. 범 금전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으나 귀인의 도움이 있으면 손쉽게 해결된다. 74년생: 정확한 판단이나 계산보다는 유연하게 대처하는 능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62년생: 전혀 생각지 못한 곳에서 도움을 받거나 동업자를 만날 수 있는 날이다. 50년생: 번민이 많으니 괴로움이 커져갈 뿐 어느 누구도 나의 근심을 풀어주지 못한다. 38년생: 사소한 일로 인해 웃고 우는 일이 잦으니 마음의 안정이 필요하다. 토끼 자신을 기만하지 말고 인정하는 자세로 현실에 임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 75년생: 좌절감을 느낄 수는 있어도 완전히 자포자기하는 태도는 피해야 한다. 63년생: 단시일 내에 무엇을 이루는 것은 과욕이니 먼 흐름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51년생: 어디서 먼저 시작할 것인가를 정확하게 정한 후에 일을 시작하길 바란다. 39년생: 황소처럼 우직한 것은 좋으나 고집이 황소라면 여러모로 피곤하다. 용 확인되지 않은 일 때문에 노심초사하지 말고 그대로 진행하면 아무 탈 없다. 76년생: 쉽게 흥분하는 태도를 없애려면 경직된 사고를 버리고 인내심을 키워야 한다. 64년생: 사소한 일로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어리석은 행동은 절대 금물이다. 52년생: 바탕이 없으면 높은 곳으로 오르지 못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40년생: 사소한 다툼이나 신경전은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잊혀지니 염려치 마라. 뱀 생각지 못한 일로 그 동안 공들인 것이 물거품이 될 위기를 맞이할 수 있다. 77년생: 사회 생활에서 배짱을 기르고 여유를 보이되 자신의 속은 어느 정도 감춰라. 65년생: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는 국면이니 취할 건 지금 취하는 게 좋다. 53년생: 길고 짧은 것은 대보면 알 수 있으니 미리 속단하는 건 옳지 않다. 41년생: 자기생각을 먼저 말하지 말고 상대방의 생각을 먼저 듣길 바란다. 말 스스로가 번영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도 번영하는 여유 있는 마음을 가져라. 78년생: 상대방에게 진실한 마음으로 감정을 표현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66년생: 눈앞의 이익을 구하여 신경을 너무 쓰면 큰 이익을 얻을 수 없다. 54년생: 겉보기에 화려한 것은 실속이 없으니 보다 세심하게 살펴봐야 한다. 42년생: 사적인 일을 여기저기 떠벌려 봤자 자신에게 득 될 것이 없다. 양 자신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과 타인의 시각이 다르니 이점 유념하라. 79년생: 같은 것을 두고 친구나 애인의 의견이 상반되니 아쉬움이 많은 날이다. 67년생: 정확한 판단이나 계산보다는 유연하게 대처하는 능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55년생: 생각이 일정 속도 앞서가는 자가 좋은 기회를 잡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43년생: 단번에 처리하기가 힘들면 조금씩 나누면 얼마든지 쉽게 해결된다. 원숭이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도 있으니 어지간하면 웃고 사는 것이 바람직한 모습이다. 80년생: 내가 느끼는 불만족한 요소들이 자신을 위한 한가지 방편일 수가 있다. 68년생: 마음속에 있는 것을 겉으로 내뱉기 힘드나 오늘 하면 결과가 좋을 듯하다. 56년생: 내게 필요 없는 것이 남에게는 소중하게 쓰일 수 있으니 다른 곳에 활용하라. 44년생: 필요할 때 찾으면 눈에 잘 뛰지 않지만 그냥 보면 쉽게 눈에 띈다. 닭 할 일은 많으나 주변여건이 따라 주지 않으니 후일을 도모함이 좋을 듯하다. 81년생: 미련스럽게 고집하지 말고 발 빠른 움직임을 보여야 할 때이다. 69년생: 겉으로는 힘이 있어 보이지만 내면은 불안과 걱정을 안고 있는 듯하다. 57년생: 부실한 부분을 보강하는 작업부터 완결하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것이 순서다. 45년생: 자녀가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지 않은지 잘 챙겨주길 바란다. 개 희비가 교차하는 날이니 예민하게 반응하지 말고 태연자약 하는 편이 이롭다. 82년생: 기대에 부응하는 것도 좋지만 무리하면 벼랑으로 떨어지기 쉬우니 자제하라. 70년생: 당장은 그럴듯해 보이나 결국 중책은 나보다 못한 사람에게 뺏길 수 있다. 58년생: 십년을 알아도 못다 아는 것이 사람인데 첫인상만 믿고 판단하지 마라. 46년생: 결정적인 기로에서 갈등하면 주변사람들 모두에게 누가 되기 마련이다. 돼지 맷돌처럼 단단한 것도 약점이 있는 법이니 잘 살피면 반드시 찾아낼 수 있다. 83년생: 아무리 폼생폼사라 하지만 오늘만큼은 실리를 추구하는 것이 좋겠다. 71년생: 밑에서 올라오는 것을 누르기는 어렵지만 위에서 누르는 건 쉽다. 59년생: 하나를 얻고 하나를 또 얻으려는 욕망은 강하지만 조금 과한 느낌이다. 47년생: 몸과 마음이 어떤 계기로 인해 하나로 합쳐지니 새로운 기운을 맞겠다. 5월18-24일 쥐 생각이 밝고 긍정적이면 만나는 사람마다 호감을 보이고 도움을 줄 수 있다. 72년생: 입지를 넓히는 것은 좋지만 현재 위치를 보다 굳건히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60년생: 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이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 애매한 때이다. 48년생: 사람만 조심하면 다른 부분에서는 대체로 만족스러운 행복한 하루다. 36년생: 기다리다 지친 망부석처럼 바라는 일이 현실로 나타나지 않는구나. 소 전망 있는 일이라도 시작하기 전에 면밀한 검토가 있어야 쉬운 법이다. 73년생: 수레바퀴가 제대로 굴러가니 계획대로 일이 잘 풀리고 좋은 결과가 예상된다. 61년생: 타인의 조언이나 협력을 적극적으로 구하는 것이 자신에게 득이 된다. 49년생: 금전손실이 예상되나 대처방법에 따라 격차가 상당히 큰 운세다. 37년생: 분기탱천할 일이 아니라면 속으로 삭이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하다. 범 현실을 인정하고 매사에 임하면 구하는 것을 얻기가 훨씬 더 용이해지는 법이다. 74년생: 풍족한 것을 마다하고 부족한 것을 택하는 사람은 용기 있는 사람이다. 62년생: 가부 간에 결단을 내려야 할 문제가 있다면 주변에 조언을 구하는 것이 좋다. 50년생: 상반된 의견을 조율하고 하나로 통일하는 일에 열과 성을 다할 때이다. 38년생: 설마 하다가 낭패 당할 수 있으니 작은 변화에도 빠르게 대처하라. 토끼 어떤한 투자든 적정한 선을 벗어나지 말아야 모든 것이 편안한 법이다. 75년생: 하면 된다는 의지만 있다면 막힌 것을 뚫고 지나가는 건 장난이다. 63년생: 업무처리에 미숙함이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되니 걱정 마라. 51년생: 시작이 어렵다고 중도에 멈추는 것은 더 큰 손실을 야기하는 행동이다. 39년생: 삼고초려의 정신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를 가슴속 깊이 새겨라. 용 소나기는 일단 피하는 것이 상책이니 때를 기다렸다가 다시 비상하는 게 좋다. 76년생: 아쉬운 부탁은 하는 사람도 힘드나 들어주는 사람도 힘든 건 마찬가지다. 64년생: 어정쩡한 모습은 불리하니 분명한 의사표현을 하는 것이 유리하다. 52년생: 내가 먼저 달려가지 않으면 남이 먼저 손에 넣으니 빨리 움직여라. 40년생: 살며시 다가오는 것은 품에 안고 소리 나게 다가오는 것은 내치자. 뱀 외적인 팽창보다 내적인 팽창을 추구하는 것이 이롭고 서남방향이 유리하다. 77년생: 이런저런 루머에 신경 쓰다보면 정작 해야 할 일은 놓칠 수 있으니 주의하라. 65년생: 사소한 실수로 인해 적잖은 손실이 에상되니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53년생: 대가성이 내재된 일에는 나서지 말고 정도를 택함이 가장 좋다. 41년생: 만사 잊고 오직 건강만 생각하면 좋으니 걱정과 근심은 잊어버려라. 말 무리한 움직임은 자제하고 쉬운 것부터 하나씩 해결해나가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78년생: 오늘은 조용히 말하는 것이 좋으니 화가 치밀어도 언성을 높이지 마라. 66년생: 약간의 모자람은 있지만 지금은 그 모자람을 채울 수 없는 시기다. 54년생: 담보설정과 같은 위험한 행동은 자제하고 안전하게 임하는 것이 이롭다. 42년생: 불편한 사람과의 만남이 예상되지만 그다지 염려할 건 없다. 양 믿음이란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니 욕심내지 말고 꾸준히 노력하라. 79년생: 악바리처럼 덤벼들지 말고 마음을 편안하게 먹고 조금만 양보하라. 67년생: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는 최소한의 결실은 맺을 수 있다. 55년생: 깊은 수렁에서 갑자기 하늘로 승천하는 기상이니 속된 말로 대박이 터진 셈이다. 43년생: 예상 밖의 일이 발생할 수 있지만 좋은 일이니 편안하게 기다려라. 원숭이 만남과 이별은 미묘한 연관성이 있으니 심리적으로 안정된 입장을 유지하라. 80년생: 내 마음을 전달한 상태라면 기다리고 아니면 오늘 전하는 게 좋다. 68년생: 자신감을 갖고 지금의 상황에 대처하면 능히 극복할 수 있는 운세다. 56년생: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면 난세를 극복하고 자신의 뜻대로 움직인다. 44년생: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응어리가 가슴속에 누적되면 병이 될 수 있다. 닭 탄탄한 기반 위에 고층빌딩을 세운다면 무너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81년생: 무슨 말을 먼저 꺼내야할지 망설이지 말고 행동으로 먼저 보여라. 69년생: 싱당기간 쌓아올린 경험을 바탕으로 움직이면 실패하지 않는 운세다. 57년생: 정신적으로 안정되면 불리한 상황을 유리한 국면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 45년생: 직선적인 말투는 상대방에게 오해살 수 있으니 둘러서 이야기하라. 개 어중간한 입장표명은 불리하니 조언을 구한 후에 확고한 입장을 표명하라. 82년생: 일방적인 사고방식을 버리고 열린 마음으로 대응하면 상당한 이득이 생긴다. 70년생: 내 수중에 없는 것을 망각하고 큰소리치면 잠시 후에 낭패볼 수 있다. 58년생: 감정표현에 충실하고 상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파악하라. 46년생: 매매하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없지 않으니 당분간 기다려보는 것이 좋겠다. 돼지 계획했던 일에 걸림돌이 나타날 우려가 있으면 잠시 멈추는 것이 이롭다. 83년생: 허공에 대고 아무리 소리쳐도 들려오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 뿐이다. 71년생: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을 붙들고 애를 태우는 분위기다. 59년생: 집안 일로 마음이 무거울 때는 다른 일에 몰두하는 것이 최선이다. 47년생: 우유부단한 태도를 버리고 정확한 입장표명을 하는 것이 유익하다. 5월25-31일 쥐 많은 것을 소유하지 말고 알짜베기만 골라서 손에 넣는 것이 이득이다. 72년생: 사람이 오고가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좌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60년생: 타인과의 부조화는 자신도 망치고 상대도 망치게 하는 지름길이다. 48년생: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은 마음을 터놓기 보다 상견례 정도가 좋겠다. 36년생: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의 아름다움을 가슴으로 느끼는 날이다. 소 개인적인 문제는 뒤로하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일에 동참하는 것이 순리다. 73년생: 원행하려는 사람은 약간의 착오로 인해 진행이 더딜 수 있으니 잘 살펴라. 61년생: 뒤로 물러서도 취하고자 하는 걸 충분히 취할 수 있으니 안심하라. 49년생: 대의를 거스르지 말고 시류에 합류하는 사람만이 도태되지 않는다. 37년생: 누군가에게 위안을 받고 싶지만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이가 없구나. 범 새로운 계획을 추진하기에 좋은 날이니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유리하다. 74년생: 복잡한 일도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생각보다 쉬워지는 법이다. 62년생: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는 옛말이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이 농후하다. 50년생: 근엄한 모습으로 아랫사람을 대하면 사람들이 흩어지기 쉬운 때이다. 38년생: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면 그에 대한 보답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토끼 인위적인 변화라도 현재로선 절실하니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갖자. 75년생: 금전과 관계된 결정은 독단적으로 행하지 말고 의논하는 것이 좋겠다. 63년생: 눈으로 보기엔 아득히 먼 곳이지만 막상 움직이면 바로 앞에 있다. 51년생: 무작정 길을 떠나는 젊었던 시절이 가고 없으니 긴 한숨만 나온다. 39년생: 새로운 것을 지나치게 추구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라. 용 근심거리가 많으면 마음에 병이 들고 곧 육신의 병으로 변하는 법이다. 76년생: 이론보다 현실적인 것에 많은 비중을 두는 것이 가장 현명한 판단이다. 64년생: 소극적인 자세로 주위를 관망하지 말고 몸으로 직접 부딪쳐야 한다. 52년생: 무엇이 대의를 위하는 선택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후회가 없다. 40년생: 활발하게 움직이면 심신의 피로도 가시고 활력소가 생성되기 마련이다. 뱀 금전문제로 구설이 따를 수도 있으니 마무리를 깔끔하게 처리하는 것이 좋다. 77년생: 기대하던 좋은 인연을 맺을 수 있으니 모든 일이 순탄하게 풀린다. 65년생: 기찻길 옆에서 책을 펼치고 있는 격이니 날이 지나도 첫 장을 넘기기 힘들다. 53년생: 보기 싫다고 그냥 방치하면 시간이 갈수록 점점 어려워질 수 있다. 41년생: 바다로 나가면 가슴이 탁 트이고 산으로 가면 머리가 시원한 하루다. 말 앞뒤로 배치되는 것을 지양하고 융화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할 때이다. 78년생: 직감에 의존하기보다는 정확한 자료를 기본으로 해서 일을 추진하라. 66년생: 햇살이 눈부시다고 외면할 수 없듯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할 시점이다. 54년생: 지난 것을 모두 잊고 주어진 현실을 직시하고 마음껏 즐기면 된다. 42년생: 한 굽이 돌아 서산에 닿으니 지나온 길이 영롱하게 기억에 남는다. 양 돈보다 소중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알고 있다면 당신은 늘 행복한 사람이다. 79년생: 남녀 불문하고 새로운 사람과의 인간관계 때문에 입장이 곤란할 듯하다. 67년생: 물질적인 손실로 인하여 품위를 잃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 55년생: 재물이 서서히 들어오고 먹구름이 차츰 사라지니 기운이 왕성하다. 43년생: 앞으로 밑지고 뒤로 버는 것이 알짜배기라는 말의 뜻을 되살릴 때이다. 원숭이 어차피 한번은 겪고 넘어가야 하는 일이라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라. 80년생: 급격한 심적 변화에 쏠리지 말고 이성을 찾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다. 68년생: 무엇이 풍부하고 무엇이 부족한지를 정확히 파악하면 진행이 훨씬 수월하다. 56년생: 행여나 하는 마음에 가슴 졸이지만 지나고 나면 기우에 불과하다. 44년생: 옆에서 도와줄 사람이 있으면 괜히 기대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닭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지만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면 곤란해질 수 있다. 81년생: 격양된 감정을 잘 추스르고 원점으로 돌아가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69년생: 언행일치를 이룬다면 오늘 자신이 바라는 것을 능히 얻을 수 있다. 57년생: 즐거워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사람은 어떤 것에서도 즐거움을 찾기가 힘들다. 45년생: 길이 아니라도 어쩔 수 없이 가야만 하는 그런 입장에 놓일 수 있는 시기다. 개 능력을 벗어나지 말고 적정한 선에서 뒤로 물러나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다. 82년생: 자신의 순간적인 재치가 상대에게는 잔머리 굴린 것처럼 인식된다. 70년생: 항상 유리한 입장만 견지할 수 없으니 불리할 때를 미리 대비하길 바란다. 58년생: 가급적 현상태를 유지하면서 사태추이를 살피는 것이 바람직하다. 46년생: 자식의 퉁명스러운 말 한마디에 속상해하고 서운한 것이 부모 마음이다. 돼지 혼자서 할 수 있는 것과 더불어서 해야 할 일을 구별하여 효율적으로 처리하라. 83년생: 감정이란 분위기에 따라 급변할 수 있으니 분위기에 도취되는 건 피하라. 71년생: 아직 정하지 못한 일 때문에 갈등이 생기면 해결하기 매우 힘들어 보인다. 59년생: 자식과 직장으로 해방되고 독립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47년생: 궁색한 변명에 여념이 없는 사람과는 거리를 두는 것이 상책이다. 새감각 바른언론-완도청해진www.wandonews.kr입력:2009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