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상세페이지

해상왕 장보고

기사입력 2005.02.08 03:42

SNS 공유하기

fa tw gp
  • ba
  • ka ks url












    천년전의 글로벌 CEO, 해상왕 장보고

























     
    저자 : 한창수
    발행일 : 2004.08.20
    형태사항 : 별판, 110p
    ISBN : 89-7633-241-5 04320
    가격 : 5,000





     
     
      해상왕 장보고 - 삼성경제연구소 발간








    삼성경제연구소는 『천년전의 글로벌 CEO, 해상왕 장보고』(SERI 연구에세이10) 책자를 발간했다. 이 책은 강력한 카리스마와 결집력으로 모래알 같이 흩어져 있던 신라인을 하나로 모으고, 청해진을 중심으로 거대한 해상 왕궁을 만들었던 전략가였지만,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역사의 저편으로 영원히 잊어질 뻔 했던 장보고란 인물을 통해 진정한 글로벌 CEO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제시하고 있다.
    또한 그의 글로벌 마인드는 국제화 되어가고 있는 오늘날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의 삶에는 강대국인 중국, 일본과 어깨동무할 수 있는 비결이 숨겨져 있다. 이제 우리는 신라시대 그가 가졌던 꿈과 성공비결을 통해 우리가 처한 난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한 수 배워야 될 것이다.

    장보고, 그는 누구인가

    천한 신분으로 태어나 당나라의 장수가 되다
    장보고는 8세기 말(통일신라시대)에 완도 부근의 한 섬에서 미천한 신분으로 태어났다. 9세기 초, 세계의 중심국인 중국(당나라)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발군의 재능을 발휘한 장보고는 무령군 군중소장이라는 신라인이 좀처럼 오를 수 없는 지위에 오르게 된다. 당시 군중소장은 천 명의 군사를 거느린 장수였다.

    재당 신라인 사회의 구심적인 역할 수행
    외국인으로서 평화적인 시기에 군에서 더 이상 출세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장보고는 군을 떠난다. 827년부터 8년간 장보고는 재당(在唐) 신라인 자치기구인 신라소와 신라방의 행정 책임자로서 역할을 수행한다. 장보고는 신라소의 책임자로서 이국 땅에서 천시받는 재당 신라인의 권익과 복지를 위해 힘썼다. 그 한 예로 장보고는 적산법화원을 설립하여 신라인의 구심점 확보에 주력했다. 또한 행정 조직 안에 통역관, 짐꾼, 연락책을 두었고, 전용 선박까지 구비하여 신라인들의 무역과 유통업에 편의를 제공했다.

    해상장악을 위한 전초기지 청해진 건설
    신라 흥덕왕 3년(828년)에 장보고는 양민을 노예로 매매하는 해적들의 참상에 분노하여 이를 근절하기 위해 귀국한다. 당에서 혁혁한 공을 거뒀으며, 재당 신라인 사회를 결속시킨 장보고의 공을 인정한 신라의 흥덕왕은 흔쾌히 병사 1만의 군진을 설치하도록 허락하고, 장보고를 대사(大使)로 임명한다. 그 결과 우리나라에서 여섯번째로 큰 섬인 완도에 청해진이 설치되었다. 완도 앞바다는 다도해의 암초, 밀물과 썰물의 변화, 육지와 부딪쳐 소용돌이치는 해류, 계절에 따라 바뀌는 해풍 등으로 변화가 많은 천연의 요새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어시누스대학교의 클라크 교수는 완도의 항해사적, 전략적 중요성을 지적하며 장보고의 천재성을 찬탄하기도 했다.

    군(軍), 산(産) 상(商) 복합체적 종합상사, 청해진
    청해진 대사에 임명된 장보고는 해적을 소탕하고 국가 간의 무역을 장려하여 동북아 해상을 지배했다. 그는 신라, 당, 일본 항로의 요충인 청해진을 군사, 선단, 항만, 조선, 항해 전문가, 통역관, 종교 시설 등이 결집된 복합적 성격의 군진으로 위치시켰다. 또한 청해진은 신라 정부로부터도 일정한 독립적 행정과 경영체제를 유지했다. 이러한 까닭에 청해진은 점차 동북아 교역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이곳에는 일본과 당나라의 상인들은 물론이고 멀리 아라비아와 페르시아 상인까지 드나들었다고 한다. 오늘날로 비유하자면 청해진은 군(軍), 산(産) 상(商) 복합체적 종합상사라고 할 수 있다.

    장보고와 해상왕국의 몰락
    신라 민애왕을 폐하고 신무왕을 즉위시키는 정변에 개입하게 된 장보고는 이후 중앙정계의 권력 다툼에 휘말리게 된다. 신라 조정을 장악한 진골 귀족들이 장보고를 견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침내 장보고를 제거하기로 결정한 신라 조정은 장보고의 옛 부하 염장을 시켜 장보고를 암살한다.
    그 결과 장보고가 죽은 지 10년 안에 청해진은 해체되고 그의 해상왕국은 소멸되었다. 허망한 장보고의 죽음 이후 신라의 국제교역은 거의 단절되었고, 신라인들은 동아시아 해상의 패권을 송나라 상인들과 아라비아 상인들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이후 고려와 조선으로 이어지는 역사에서 해상 경영은 지속적으로 후퇴했다. 그 결과 19세기 후반에 조선은 서양과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장보고, 그는 어떻게 해상을 지배했는가

    시대를 읽는 남다른 눈의 소유자
    장보고는 조공무역이 퇴조하고 민간무역의 시대가 도래하리라고 판단했다. 장보고는 종래의 중앙집권적 질서가 와해되고 국가 간 긴장이 완화되면서 민간의 자발적 교역이 증대하리라는 혜안을 가졌다. 즉 민간인이 자유롭게 오가는 개방적인 세상의 도래를 정확히 예측한 것이다. 그러한 인식에 기초하여 장보고는 중국의 양주(陽州)에서 일본의 하카다까지 섬과 대륙으로 둘러싸인 동북아를 하나의 세계로 바라보았다. 웅대한 스케일의 해양 지향적 사고를 가진 것이다.

    국제적 감각의 리더십을 소유한 리더
    민군(民軍) 1만과 그 가족으로 이루어진 해상왕국이 질서를 유지하며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했던 것은 장보고의 탁월한 리더십에 기인한다. 상이한 문화와 국경을 망라하는 글로벌 네트워크의 지휘자로서 장보고는 포용력을 갖고 있었다. 즉 그는 국가별 문화적 차이를 인정할 줄 알았으며, 다양한 인재를 거느리는 도량을 지녔다. 일례로 장보고는 조선술, 항해술, 통역 등 청해진에서 요구되는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인적 자원을 대부분 해외에서 조달했다. 광범위한 지역에서 인적 자원을 아웃소싱했던 건 그의 국제적 감각의 리더십을 소유했음을 말해준다.

    군사력, 조선술, 항해술 등 완벽한 실력의 구비
    장보고가 동북아 해상을 소유할 수 있었던 요인 다음과 같다.
    첫째, 군사력이다. 장보고는 1만의 군사를 확보했다. 당시 영해라는 의식조차 희박하던 시절 장보고는 강력한 군사력을 기반으로 해상교역을 주도했다.
    둘째, 조선술이다. 바다를 향한 신라인들의 열정은 장보고 이전 시대부터 계속되어 왔으며 그 결과 신라 선박은 멀리 일본에까지 그 우수성이 알려질 정도였다. 일본의 민간인과 국가 사절들은 대외교류에 장보고 휘하의 배들을 이용하곤 했다. 이렇듯 당시 신라의 조선술은 뛰어났다.
    셋째, 항해술이다. 서해 연안, 대한해협의 물길을 모두 알고 있던 신라인들은 범신라인을 조직화하여 항선의 관리를 일원화했다.

    주도권 확보를 통한 선발자의 이익 극대화
    장보고는 조공무역이 주류를 이루던 시기에 민간교역을 도입하여 활성화시킴으로써 새로운 교역형태를 창출했다. 즉 새로운 산업이 형성되는 초기 단계에서 주도권을 잡고 선발자의 이점을 극대화시켜 나간 것이다. 그는 동북아의 정세 변화에 맞춰 조직화된 민간차원의 무역거래를 시도함으로써 무역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정의했다. 장보고 선단은 무역업무뿐만 아니라 정부간 무역의 대행, 3국 정부의 공식사절 안내, 여객 운송, 선박 건조와 수리, 통역과 선원 제공, 종교와 문화 지원, 실크와 청자개발 무역 등 각종 상업 서비스와 문화사업까지도 수행했다. 청해진은 국제적 교역지 답게 다양한 품목을 취급했으며, 일부 신용거래 방식까지 도입했다.

    네트워크의 활용
    청해진은 신라, 당, 일본 항로의 중심이자 페르시아, 인도, 태국 등 동남아시아와 중국 동남부를 연결하는 남양 항로와 동북아 항로의 연결 고리였는데 이는 신라, 당, 일본에 거주하는 신라인들을 포괄하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가능할 수 있었다. 청해진을 중심으로 3국에 거주하는 신라인들은 오늘날의 종합상사에 버금갈 정도의 강력한 정보력을 확보하고 있었다.

    글로벌 가치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
    장보고는 개방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당시 국제 사회에서 통용되던 글로벌 가치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청해진 중심의 해상체제의 국제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청해진의 활동에 당과 일본을 참여시키기 위해 당시 세계에서 통용되던 글로벌스탠더드를 적극 도입했다. 즉 당나라의 직제를 청해진의 조직에 차용했다. 또한 장보고는 불교를 당시 신라, 당, 일본을 포괄하는 보편적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으로, 3국을 잇는 가치체계로 삼았다. 즉 국적을 초월한 공감대 형성의 필요성을 이해한 것이다. 이러한 의식은 중국 산동성에 적산법화원, 완도에 상왕봉이라는 법화사의 창건으로 발현되었다.

    장보고가 제시하는 기업경영의 노하우는 무엇인가

    고정관념 없는 기업가 정신
    장보고가 민간교역의 신기원을 연 건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은 탓이다. 골품제에서 자유로웠던 장보고는 청해진의 설치와 민간교역 과정에서 끝없이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했다. 남들이 미처 보지 못한 가능성을 정확히 읽고 이를 두려움 없이 실천하는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이야말로 기업과 국가의 국운을 좌우하는 관건이다. 오늘날 한국 기업들에게 필요한 것은 세계의 높은 문턱에 도전하여 글로벌 기업이 되려는 기업가 정신이다.

    21세기 경영의 키워드(복합화, 네트워크화, 글로벌화
    첫째, 복합화이다. 청해진은 무역과 관련된 종합적이고 복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신비즈니스 모델이다. 이러한 복합 비즈니스 모델은 뒤로는 후발국 기업들의 추격을 받고, 앞에서는 선진기업들의 압박을 받는 한국 기업들에게 절실한 모델이다. 오랜 세월 탄탄한 제조 경쟁력을 구축해온 한국 기업은 이제 제품, 기술, 사업을 복합화함으로써 새로운 진로를 모색해야 한다.
    둘째, 네트워크화다. 장보고가 구현한 해상지배 역량의 원천은 동북아 해상과 연안을 거미줄처럼 엮는 네트워크였다. 오늘날의 경영환경에서 네트워크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고 있다. 종래 한국 기업들은 이같은 경영 추세에 아랑곳하지 않고 대부분 자력주의, 순혈주의를 고집해 왔다. 이제 사내 기밀 유지, 임직원의 충성심과 단합 등을 중시하는 경영환경은 탈피되어야 한다.
    셋째, 글로벌화다. 긴장완화 시대, 개방화 시대에 살아남는 노하우로 장보고는 글로벌스탠더드를 수용했다. 오늘날 글로벌화의 필요성을 당시보다 절박하다. 허나 대부분의 한국 기업들은 본국 경쟁력에 의존한 채 소극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현재 많은 기업들은 세계화(globalization)와 현지화(localization)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학계에서는 이 두 단어를 합성하여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이라 부르고 있으며, 아직 그 구체적 방법론에 대해서는 합의가 없으나 각 기업은 자사의 핵심 역량과 제품, 시장의 특성을 고려하여 자신에게 맞는 글로벌화를 모색해야 한다.

    무형자산의 활용
    장보고의 경쟁우위는 눈에 드러나는 것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즉 정확한 항로파악, 항해술과 조선술, 각 지역 산물과 거래에 대한 지식 등이야말로 절대적 경쟁우위 요소였다. 핵심기술을 비롯한 지식기반은 기업의 가치창출과 경쟁력의 원천이다. 오늘날 기업들에게 기술, 브랜드, 기업 이미지 등의 무형적 경쟁요소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경쟁자와 차별화를 꾀하려면 무형자산 축적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경영의 지속가능성 추구
    장보고의 죽음으로 청해진은 급작스럽게 몰락했다. 이는 청해진이 시스템이나 조직력을 갖추지 못한 장보고 개인의 역량으로 운영되었기 때문이다. 조직이란 리더의 개인적 한계를 넘어설 때에만 비로소 영속할 수 있다. 경영의 영속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확고한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시스템은 리더십과 더불어 조직을 구성하는 양대 축이다. 조직은 시스템을 통해 리더를 포함한 구성원 개개인의 약점이나 한계를 커버할 수 있다.
    경영의 영속성을 위한 두번째 방안은 후계자 양성이다. 서구의 많은 기업들은 차기 CEO를 육성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반면 대부분의 한국 기업들의 후계 구도는 불분명하다. 리더십의 공백이라는 불의의 사태를 예방하는 법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권력과 긴장 관계 유지
    청해진의 갑작스런 종말은 장보고가 중앙의 권력 다툼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즉 그는 기업인으로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것이다. 고금을 막론하고 정치 권력은 성공한 기업가가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기업이란 모름지기 권력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정치권력과 기업은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不可近不可遠)’의 관계여야 한다.

    제2, 제3의 장보고는 어떻게 출현되는가

    사고 발상의 대전환
    오늘날 동북아 지역의 긴장 완화를 국운 상승의 계기로 삼을 수 있도록 대외 지향적이고 진취적인 국가 아젠다를 설정해야 한다. 새로운 아젠다는 남북분단, 지역감정, 계층간 갈등 등의 대립에서 벗어나 대내적 상생과 대외적 공생의 국민적 공감대를 갖는 것이어야 한다.

    글로벌 민족 역량의 결집
    장보고가 해외에 흩어진 신라인들의 거점을 자산으로 보았듯이 우리도 재외 한국인 동포를 전략적으로 격려 지원해야 한다. 또한 이들 중 우수 인력이 국가에 봉사할 여건과 기회를 마련하고, 이들에게 주어지는 각종 제약은 해제해야 한다.

    해상 경영의 활성화
    반도인 한국은 대륙 국가이자 해양 국가이다. 그러나 오랜세월 우리는 대륙 국가임을 주장했다. 이는 해양 국가임을 스스로 포기한 셈이다. 21세기 한국의 선택은 달라져야 한다. 목전에 이미 도래한 정보화와 글로벌화는 대표적인 해양화 추세이다. 태평양 시대의 중심국가를 지향하는 한국은 향후 더 한층 해양 경영을 강화해야 한다. 이는 옛 영화를 복고하자는 태도가 아니라, 가진 것을 개방하고 남과 교류하여 상호 이익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경제적 측면만 보아도 우리의 수출입 물동량의 99% 이상이 바다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으며, 조선산업에서는 세계 빅3 업체를 모두 보유한 세계 1위의 조선국이다. 해양 경영의 활성화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동북아시아 허브국을 향해
    21세기 한국 경제가 가진 큰 비전 가운데 하나는 한국이 동북아, 더 나아가 동아시아의 허브국이 되는 것이다. 중국 경제의 성장, 남북 긴장 완화 등은 허브국의 비전을 현실성 있게 만들어주는 조건이다. 한국은 인적 자원이 우수하고 중국 등으로 진출이 쉬운 이점 뿐 아니라 높은 기술력을 보유하여 동북아 허브국으로서 손색이 없다. 동북아의 허브국이 되기 위해 전략적 요충지로서 황해와 동해의 활용을 극대화해야 한다. 앞으로 해양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도서 영유권 분쟁도 계속될 것이다. 이 문제에서도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바다 국경선이 가장 많이 중첩되고 이해관계가 복잡한 한국의 주도적 참여도 관건이라 하겠다.

    <편집자 주>

    backward top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