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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진칼럼- 가나안농군학교와 김용기장로님을 다시 생각한다.

기사입력 2011.12.16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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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해진칼럼

    가나안농군학교와 김용기장로님을 다시 생각한다. 

                                                                    도민편집장 서해식

     한국기독교가 한국 현대사에 기여한 공이 대단함에도 작금의 교회와 크리스챤들의 부정적인측면이 많이 부각되어 위기감이 고조된 가운데 그리워지는 인물 새삼스럽게 조명해 보고싶은 가나안농군학교가 떠오른다.
    새마을운동의 효시가 되었던 가나안농군학교의 복민운동은 진정성이 묻어나 잠든 신앙과 한국을 깨우는 시대정신이었다.
    가나안농군학교와 김용기장로는 예수정신을 농촌에 접목하여 하면 된다는 적극적 신앙의 실천을 강조했다.
    김용기장로 그분은 가고 없어도 그분이 남기신 정신은 살아있다. 일생을 통해 조국과 교회와 민족을 위해 피와 땀을 아낌없이 쏟으시고 바치신 장로! 그립습니다.
    언행일치의 산 교육의 선봉에 서서 혼이 깃든 강훈련을 몸소 체험으로 보여주셨던 김장로였다.
    김장로가 세운 가나안농군학교는 경기도 하남과 강원도 원주신림에 있다. 핵가족화로 가정이 해체되고 이혼율이 급증한 현실을 안타깝게 여기며 가족공동체 복원을 강조해온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서 많은 가정이 회복되기도 했다.
    김장로는 청교도정신을 되살려 근검절약을 생활화하신 분이다. 10원을 비웃으면 10원에 운다. 비누는 반드시 비누케스에 넣어 물기를 빼고 사용하라.
    치약은 칫솔 3칸정도 묻혀서 사용하라는 등 절약을 강조 하였다. 과소비가 미덕인 현대인들에게 비웃음을 살 정도로 절약을 강조했다는 것.
    밥알 한톨이라도 버려서는 안된다며 식사예절을 누누이 설명하시던 그분이 왜 이리도 그리워 질까요.
    고무신을 신고 양복 한번 입어 보지 않고 노타이 차림으로 일생을 보내셨던 장로님은 막사이상을 수상하러 필리핀에 갔을 때도 고무신신고 한복차림으로 시상식에 참석했던 일화는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김용기장로의 자녀들도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가나안농군학교를 꾸려가고 있다.
    복받을 준비를 해야 복을 받게 된다며 복민운동을 제창하시고 일그러진 민족의 부정적 이미지를 불식하고 국민 개체 스스로부터 참된 자아상을 창출하여 정신개혁을 강조하시던 장로님은 "이렇게 살때가 아닌가"라는 저서를 국민독본으로 내놓아 관심을 모았다. 슬로건처럼 다가선 " 우리는 역사의 동상이 되자" 우리는 시대의 등불이 되자"
    "우리는 판단의 저울이 되자" 우리는 문화의 발판이되자" " 우리는 선악의 거울이 되자"
    귓가에 생생하게 메아리쳐 온다.
    권력과 부를 함께 거머쥐며 목적보다 수단이 정당화되고 수많은 지도층 인사들과 교계지도자들이 질시와 비난의 대상으로 전락해가는 시대상을 보면서 지도자와 지식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나안농군학교는 보여주고 있다고 본다.
    우리가 지향하는 목표가 정확하지 못하면 혼란에 빠진다. 경제가 어렵고 고통분담의 요청이 거북스러워도 우리들의 삶의 공동체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다시한번 가나안농군학교의 정신을 구현하여 이시대의 병폐를 치유하는 처방전이 되었으면 한다.
    키는 작달막하면서도 옹골차기만 하셨던 김용기장로 참 대단한 거인이셨다.
    새마을운동도 알고보면 박정희대통령이 가나안 농군학교를 방문하고 김용기장로의 멘토로 시작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가나안농군학교 복민운동은 잘살기운동이었다는 증좌로 남아있다.

    새감각 바른언론-청해진신문 www.wandonews.kr
    입력201112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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