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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희 교수의 21세기 손자병법

기사입력 2004.08.02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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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강 때로는 돌아가는 것이 아름답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제(濟)나라에 안영(晏?)이라는 유명한 정치가가 있었다. 그는 조그만 키에 볼품 없이 생긴 사람이었지만 세 왕에 걸쳐 재상을 하면서 제나라를 강한 나라로 만든 유능한 정치가였다.

     그가 제 나라 왕 경공(景公)을 모실 때 일이다. 어느 날 왕이 사냥을 나갔는데 사냥지기가 자신의 임무를 다하지 못하고 부주의하여 왕이 사냥한 사냥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왕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그 자리에서 사냥지기의 목을 베라고 명령하였다. 같이 사냥을 나갔던 주변의 신하들은 모두 어쩌지 못하고 바라보고만 있었다.
    왕이 사냥지기의 목을 베면 사냥감 때문에 사람의 목을 베었다는 소문이 퍼질 것이고 그러면 세상 모든 제후들이 경공을 비난할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지금 만약 나서서 말리다가는 왕의 분노로 봐서 자신들에게도 해가 미칠 것을 두려워 한 나머지 신하들 모두 머뭇거리고 있었다.
    이때 한 신하가 안영에게 도움을 청하러 달려갔다. 보고를 받은 안영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서둘러 경공에게 나아갔다.
    그러나 왕은 화가 머리 끝가지 나 있었고 여기서 어떤 말을 직설적으로 충고한다고 해서 왕의 무모한 지시가 철회될 리가 없었다. 안영은 이 순간에 직접 경공에게 충고하지 않고 우회하는 전술인 우직지계(迂直之計)를 선택하였다.
    안영은 우선 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냥지기가 자신의 임무를 망각하고 게을리 했으니 죽어 마땅합니다. 다만 죽이더라도 저 자가 왜 죽는지는 알아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세상 사람들이 아무런 말이 없고 사냥지기가 아무 반발을 못할 것입니다.


    자신의 뜻에 동조하는 안영에게 왕은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하라고 명하였다.
    안영은 사냥지기를 끌고 나오라고 해서 그에게 큰소리로 세 가지 죄목으로 추궁하기 시작했다.


    너는 세 가지 죄를 범했다.

    첫째 너의 맡은 바 임무인 임금님의 사냥감을 잃어버린 것이 죽을 죄다.


    뒤에서 지켜보던 왕은 자신 생각에 동조하는 안영의 추궁에 흐뭇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안영은 계속해서 죄를 추궁하였다.

    둘째 우리 인격 높으신 군주가 한낱 사냥감 때문에 사람을 죽게 하고 있으니 부덕한 군주로 만든 것이 너의 죽을 죄다. 이 말을 뒤에서 듣고 있던 왕은 뭔가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안영은 세 번째 잘못을 추궁하였다.

    셋째 우리 군주가 겨우 사냥감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는 소문이 이웃나라에 퍼지면 세상 사람들에게 사람을 죽인 군주라고 비난받게 될 것이니 이것이 너의 세 번째 죽을 죄다. 자 이러고도 살아남기를 바라느냐!

    안자는 이렇게 세 가지 죄상을 차근차근 말하고 나서 사냥지기의 목을 베라고 지시하였다. 끝까지 듣고 있던 왕은 부끄러워 얼굴이 빨게 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어느새 자신이 사냥감 때문에 분노가 지나쳐서 사람을 죽이는 우를 범하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왕은 슬며시 안영에게 사냥지기를 놓아주라고 지시하였다.


    안영은 직접적으로 자신이 모시는 주군과 충돌하지 않고도 우회적인 방법으로 신하된 도리를 다하고 자신의 주군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였다. 만약에 화가 나 있는 왕에게 나아가 직설적인 화법으로 소리지르며 ‘아니 되옵니다!’라고 외쳤다면 그 왕은 정말 못 난 왕이 되었을 것이고, 왕과 신하의 갈등은 더욱 깊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직장에서 만나는 상사와 부하 직원들. 그들과의 인간관계에서 때로는 우회하는 것이 곧장 가는 것보다 빠를 수가 있다. 이것이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우직지계(迂直之計)의 미학이다.



    우회는 아름답다. 직접적이고 솔직한 표현이 효과가 클 때도 있지만 고전의 지혜에서 보면 하수(下手)들의 방법론이다. 고수(高手)는 자신의 감정을 여과 없이 내보내지 않는다. 언제나 한 번 더 생각하고 철저하게 여과하여 내 보낸다. <우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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