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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주은 것

기사입력 2004.05.25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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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가 오정순 연재 

    [2회] 본능


    공항의 화장실은 밖에서 발목 부분까지 볼 수 있다. 우연한 사고의 발견이나 치안을 위한 배려이기도 하겠지만 나에게는 늘 궁굼증을 유발하는 창구가 된다.
    엄지 발가락이 유난히 튀어나온 나에게 구두를 선정하는 일은 어느 일보다 심혈을 기울여야 구매에 실패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우연히 시선이 머무는 곳을 알고보면 구두방 앞이거나 바로 공항의 화장실 문 아래쪽이다.
    옷도 보이지 않고 얼굴색도 모르지만 발만 보이는 그곳은 나에게 호기심에 발동이걸린다.
    어느 날이다. 그곳에서 내 발에 이상적이다 싶은 구두를 신은 여인의 발을 보게 되었다. 모양도 예쁘고 기능성도 있어보여 나도 모르게 그 여인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리 손을 씻는 척하며 기다려도 나오지 않아 답답함을 풀지 못하고 공항을 빠져 나왔다.
    무심히 걷다가 그런 행동을 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무엇인가 줄이 잡히는 기분이 들었다.
    누구에게나 있을 약점이 무의식적으로 들추어지는 행동 패턴이 있으리라는 짐작이다. 가능하다면 내 발가락이 조금이라도 덜 튀어나오게 보이기 위한 무의식적 노력은 끊임없이 어느 장소에서나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아직도 나는 아름답고 싶은 욕구가 식지 않았음을 들켜버린 셈이다.
    지난 연말 문인회 망년모임에 갔을 때 지인 네 명이서 한 테이블을 차지하고 우리네 식으로 웃음을 생산해냈다.
    하하호호 건너 테이블에서 재미나 보였던지 몇몇 인구이동이 일어났다.
    "저 이곳에는 사람 세 명과 여자 한 명이 있는데 어느 쪽으로 술잔을 돌리렵니까?"
    "아, 시계반대방향으로요...."
    "아, 저는 사람도 아직 다 못되어서 반토막입니다."
    이러저래한 이유로 여자와 사람은 대별되지 못하고 말았다.
    그중 여자로 명명된 한 문우는 자주 거울울 보고 있었으며 지난 해보다 눈이 어딘지 모르게 예뻐져 왔다. 그래서
    그이는 그냥 여성이라고 지칭해주었다. 그리고 우리네는 사람의 공통성으로 놀자고 그러하였으나 꾸미지 못한 변명에 불과했다.
    아직도 발이라도 아름답고 싶은 열망이 남았는데 무슨 사람으로 두루뭉수리로 몰아붙일 것인가. 나는 아직 여자다. 내 년에는 말을 바꾸어야겠다.
    어느 글에서 여성의 아름다움을 말하면서 어디어디 해도 여성에게서 종아리를 빼면 안될듯 종아리 예찬을 해놓았다. 그 대목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입고 있던 펑퍼짐한 바지를 둘둘 걷어붙여 종아리가 나오게 한 다음 책을 방바닥에 덮어놓고 양 종아리를 드러내고 아이들방에 있는 전신체경 앞으로 갔다. 거울앞에서 뒤로 돌더니 종아리를 비쳐본 다음 신문지를 깔고 굽이 높은 구두를 가져다 거울 앞에서 신어보는 것이다. 그리고 구두를 벗어 신발장에 넣고 돌아오다가 갑자기 부끄러워지며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내가 지금 뭐한거야. 미쳤나봐. 누가 보았더라면 무어라 했겠어. 무릎 위의 피부에는 주굴주굴 잔주름이 밀리는데 지금 너의 그 행동이 저 브라운관에 비쳤다고 생각해봐'
    알다가도 모를 나는 아직 여자가 맞다. 생명이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한 아름답고싶은 본능을 버릴수는 없을 것같다. 어느집 노모에게 지나가는 말로 백화점에 같이 가시겠냐고 물었을 때, 그 노인은 그러겠다고해서 같이 쇼핑을 하였다는 글을 읽었다. 그 때 노인에게 무엇을 사드리면 좋겠냐고 물었고 그 아들은 어머니가 코티분을 사달라는 말에 놀랐다고 적고 있다. 아름답고 싶은 여성의 거룩한 본능을 아니라고 부정할 수 있을 사람은 이제 없을 것 같다. 다음 해 망년모임에는 정성껏 아름답게 꾸미고 나가야겠다. 그것이 진실이니까. 040511-0517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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