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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기고]시작과 끝 ②

기사입력 2004.05.04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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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가 오정순<사진>
                 (전, 국회 건설교통위원회, 수석전문위원 손성태 가족)
      한번 늦으면 평생 지각생이기에 남편은 늘 달리는 자세다. 어쩔 수 없이 아내도 거들어야 했다. 이리저리 종류를 달리하며 돕는답시고 내 마음도 어지간히 닳아졌을 것이다. 그 덕에 마음에 관한 한 준 전문인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남편은 손끝이 닳아졌다. 기계에 익숙하지 않은 남편은 무엇이나 종이에 쓴다. 날마나 밤 12시까지 책상에 앉아 읽고 쓴다. 어느새 읽고 쓰던 것을 말로도 하는 세월을 맞았다. 입술도 닳았을 것이다.
    입에서 냄새날 만큼 말이 없던 사람이다.
    "여보 밥 빨리 주게, 커피와 과일도 주게, 먼저 자게"가 말의 전부였던 사람인데 참 많이 변했다. 아마도 일생 동안 사람이 할 말은 어느 만큼 정해져 있는데 그 동안 하지 않고 축적된 말을 그렇게라도 내놓아야 했던가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나는 믿는다. 말이 어눌하여 걱정하던 사람인데 끊임없이 자신을 계발하고 용감하게 자신을 시험하면서 바꾸어 나가는 것을 보면서 나는 사람 자체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가지게 되었다. 인간의 잠재력은 참으로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곁에서 확인하였다.
    어찌 보면 돌처럼 굳은 의지력으로 뭉쳐진 사람 같지만 자식이 대학에 낙방하였을 때 박사논문을 쓰다가 놓는 것을 보면서 말없는 사람이 속으로 앓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의 관심이 다음 해에 확인되었다.
    처음 보여주었던 것보다 아버지에게 기쁨을 크게 안겨준 아들에게 힘을 얻은 남편은 박사논문을 거뜬히 쓰고 국회의 공학박사 1호가 되었다.
    처음 우리 부부는 둘이 다 인생설계를 썼다. 마칠 때 열어보자는 봉인해서 도장을 찍어 일기장 첫머리에 붙여 두었는데 외울 것도 없이 간직된 굵직한 사안들이지 않았는가. 나는 남편이 공부하는 공무원이 되기를 꿈꾸었다. 그런데 남편은 국회의 공학박사 1호라는 호칭을 얻은 게 보람되다.
    남편은 직장 이야기를 집으로 물고 오지 않았다. 어찌 어둡고 힘들고 때로는 쓸쓸한 날이 없었으랴. 그 날이 그 날인 것처럼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화를 내 본 일도 없다. 그러나 가족은 안다. 처음에는 몰라서 이상하게 여겼지만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무엇인가 있어서 저러는구나 하고 눈치를 챈다. 그 점이 끝나는 시점에서 참 고맙다.
    일, 일에 뭍혀 일 밖에 모를 줄 알던 남편이 은혼기념으로 휴가를 내어 나와 함께 남미 여행을 한 것은 결혼생활 내내 가장 함께 지낸 긴 시간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한 여행과는 다른 의미있는 일이라 멋지게 기억하고 싶다. 결단력 있는 성격 덕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한편, 국회가 허락한 선물 같다.<끝>
    ⊙오정순(吳禎順)수필가는
    광주교대 졸업  안산초등학교 교사, 도서출판 계몽사를 거쳐 1993년 현대수필로 등단하여 현대수필 문인회 초대회장 역임, 한국문인협회 회원, 펜클럽회원, 카톨릭문인회 간사, 현대문예동인, 한국여성문학인회 회원, 현재 강남여성센타 및 서울 장애인센타 복지관 강사로 봉사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그림자가 긴 편지, 언제나 우리는 문 앞에 서 있다, 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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