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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싶은 섬! 청산도를 자랑하는 주민들金容煥이 만난사람 - 청산도를 자랑하는 주민들 가고싶은 섬! 청산도, '서편제' 돌담길, 출렁이는 보리밭, 유채밭 ▲ 청산도 풍경 주민들은 “가고싶은 섬 청산도”가 국비사업에 선정되길 총력 질주 청산도는 참 예쁜 섬이다. 황톳길은 꼬리 치며 언덕 너머로 달아나고 그 길을 따라 구불구불 돌담이 이어진다. 청산도 주민들이 자랑하는 “가고싶은 섬” 청산도 돌담 안에는 벌써 맥주보리, 쌀보리가 무릎만큼 자랐다. 바람에 불 때마다 푸르게 출렁이는 보리밭. 샛노랗게 핀 유채는 감청색 바다와 어우러져 눈부신 대비를 이룬다. <편집자 주> ▲ 봄의왈츠 촬영현장-청산도 ▶ 청산도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영화 <서편제> 촬영지다. 도청리 선착장에서 내려 언덕길을 따라 1㎞를 가면 당리 마을. 돌담길이 바다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다. 바로 이 길에서 한국 영화사상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히는 5분20초의 롱테이크 장면이 탄생했다. 이웃마을에서 노래를 팔고 돌아온 유봉(김명곤-현,문화관광부장관)과 의붓딸 송화(오정해), 의붓아들 동호(김규철)가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돌담길을 따라가던 장면이다. 이곳은 해신촬영도 하였던 곳이며 지난해 봄의왈츠 세트장을 세우고 촬영 후 TV를 통해 전국에 방영되어 관광명소로 알려졌으며 오는3월에 일본전역에 NHK방송을 통해 드라마로 방송된다는 반가운 소식이다.<사진 정성희 청산면장> ▲ 정성희-청산면장 ▶ 흙길의 길이는 300m 정도. 나머지는 시멘트 길이다. 길 전체에 시멘트를 발랐다가 관광객들의 성화로 시멘트를 뜯어냈다. 황토 길이 비가 오면 다닐 수 없어 또 다시 황토색시멘트로 재시공하여 단장했다. 신선이 살았다는 아름다운경관과 돌담길, 지석묘, 구들장논 등 다양한 섬 문화를 보유한 청산도는 때묻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생명섬이다. 유채꽃이 핀 봄날에 건초더미를 얹은 지게를 짊어진 농부들이 오가는 모습이 정겹다. <사진 지복남 청산농협조합장> ▲ 지복남-청산농협조합장 ▶ 문화의 섬 청산도 봄의왈츠 세트장가는 길 아래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유심히 살펴볼 만한 것이 있다. 초분이다. 초분은 시신을 땅에 바로 묻지 않고 이엉 등으로 덮어두었다가 2∼3년 뒤 씻골하여 땅에 묻는 장례풍속의 하나. 100년 전만 해도 육지 내륙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었으나 일제 강점기에 사라지고 일부 남·서해안 지역과 도서지방에만 남아 있다. 현재 청산도에 4기의 초분이 있다. <사진 곽만석 청산면도청2구 노인회장> ▲ 곽만석-도청2구노인회장 ▶ 청산도는 아름다운 섬이지만 이 섬을 일궈 살림을 꾸리던 사람들은 참 고단한 생을 살았다. '청산도 처녀 시집갈 때까지 쌀 서말 먹기 힘들다'는 말도 있었고 '여자들은 청산도로 시집가지 말라'는 말도 있었다. 해녀들이 자연산 전복과 성게를 잡아 일본에 수출하였다. ▶ 청산도 삶의 팍팍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구들장논이다. 지금도 도락리포구 양 옆에는 구들장논이 남아 있다. 구들장논은 산을 깎은 다음 구들장 같은 평평한 돌을 깔고 그 위에 다시 흙은 덮어 만든 논. 청산도에는 돌이 많아 물이 고이지 않기 때문에 농사를 짓기 위한 방편으로 돌을 깔았다. 그러다보니 흙이 기름지지 못했고 퇴비를 매년 해야 했다. 아직도 그 논에서 농부들은 누렁소를 끌고 논갈이를 한다. <사진 정옥남 전,완도군의회 부의장> ▶ 바다도 아름답다. 도청항에서 서쪽으로 가면 지리해수욕장. 1.2㎞ 길이의 모래밭이 곱다. 수령 200년이 넘은 곰솔 800여그루가 모래밭 뒤편으로 군락을 이루고 있다. 대모도와 소모도 너머로 지는 일몰이 아기자기하다. 고기잡이와 낚시체험을 할 수 있는 청산도. ▲ 조유덕 자원봉사회장 섬 동쪽에는 신흥해수욕장이 있다. 몽돌해변이다. 아기 주먹만한 크기의 돌들이 널려 있다.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잘그락잘그락하는 소리를 낸다. 발로 바닥을 치면 퉁퉁 울린다. <사진 조유덕 완도군청산지부 자원봉사회장 > ▲ 양화승 유치위원장 ▶ 지금 청산도에 가면 참 볼 것이 많다. 봄의왈츠 세트장과 푸른 보리밭뿐만 아니라 여름철에는 모내기를 위해 물을 댄 무논도 아름답다. 계단처럼 층층이 쌓인 무논은 해질 무렵이면 석양을 오롯이 받아낸다. 거름을 대기 위해 일부러 베지 않은 풀밭에는 보라색을 꽃을 피워 문 자운영이 가득하다. 새참을 이고 자운영 밭 사이를 걸어가는 아낙들의 모습이 평화롭다. 청산진 등 역사문화유적을 보유하고 읍리 멸치휘리배소리로 한국민속예술제우수상을 수상한 “역사 문화체험의 섬 청산도” 이다. 얼마 남지 않은 청산도의 봄, 유채꽃이 피면 장관이다. 서둘러 가 즐겨볼 일이다. <사진 양화승 “가고싶은섬 청산도”유치위원장> ▶ 영화속 돌담길보다 훨씬 멋진 모습이다. 봄의왈츠 세트장, 청산도 원더플! 한편, 문화관광부는 전국에서 3곳의 “가고싶은 섬”을 선발하여 국비사업으로 관광명소로 개발할 계획이다. 청산도 주민들은 “가고싶은 섬 청산도”가 국비사업에 선정되길 총력 질주하며 관광객들에게 청산도 안내에 여념이 없었다. 추수를 끝낸 삭막한 영화속 장면보다 보리와 마늘의 푸르름과 유채의 노란색이 어우러진 모습이니 더할 나위없는 풍경이다. 바닷바람에 어디선가 진도아리랑 가락이 들려오는 것 같다. 아리아리랑 서리서리랑 아라리가났네 에으헤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서산에 지는 해는 지고 싶어서 지느냐날두고 가는 님은 가고 싶어서 가느냐만 경창파에 두둥둥 뜬 배어기여차 어야 뒤어라 노를 저어라 <石泉김용환 대표기자> 새감각 바른언론-청해진신문 www.wando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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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호의원 인터뷰金容煥이 만난사람 - 이영호 국회의원 인터뷰- (강진,완도 지역구/열린우리당 부대표/국회농림해양수산위원/ 국정감사 NGO 모니터단 선정 2006년도 국정감사 우수의원에 3년연속 선정 ▲ 이영호 국회의원 1. 초선의원으로써 여당 원내부대표까지 되셨는데 국회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 ? - 완도에서 나고 자랐으며, 15년간 해양수산부에서 공직생활을 한 경험을 비춰볼 때, 어촌, 수산업, 어업인이 우리나라 산업부분에서 가장 홀대받고 소외된 지역으로, 농·어촌, 농·수산업, 농·어업인을 위한 의정활동, 홀대받고 소외된 분들의 대변인 역할을 해야겠다는 책임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국회의원이 되고자 한 것도, 또한 당선된 후 제가 하고 있는 일도 바로 농어업, 농어촌, 농어업인을 위한 일입니다. 전국민의 70%가 도시에서 생활하고 있고, 도시위주의 정책과 특히 수도권중심의 정책과 경제적지원은 도시와 농어촌의 양극화를 더욱 더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도시지역 출신의 국회의원이 많은 까닭에 도시중심의 시각에서 농어촌을 바라보고 있고, 정책적지원에서도 농어촌이 소외받고 홀대받고 있는 것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농어업의 회생과 농어촌의 활성화, 농어업인의 소득증대를 위해 농어업에 대한 벽을 깨고, 새로운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부산에서 대학을 다녔기 때문에 영호남 구분 없이 많은 의원들과 광범위한 교류를 하고 있습니다. 농어촌 분야와 해양수산에 대한 관심을 제고시키기 위해 농림해양수산위 소속 위원으로 활동하는 외에 국회의원들로 구성된『바다포럼』과 『농어업회생을 위한 국회의원모임』을 주관하여 정기적으로 의원들과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 전체 수계산업을 망라하여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지난 11월 23일에는 국회에서 『태평양포럼』을 창립하기도 했습니다. 이를 통해 불합리한 농어촌 관계법령을 시정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29건의 법안 대표발의와 22건에 달하는 정책보고서를 발간하였습니다. 저 혼자의 힘으로 농어업의 일대혁신을 일으킬 수는 없지만, 국회 내에 농림해양수산에 대한 관심을 상당히 고취시켰다고 봅니다. 2. 당내외에서 농어민을 위한 입법에 대하여 매우 강성이라는 이유는 무엇인가? - 지금까지 제가 총 29건의 법안 대표발의와 22건의 정책보고서를 발간하였습니다. 229명 국회의원 중 29건의 대표발의를 한 의원은 10명 내외가 될 것입니다. 29건의 법안 중 직접적인 농어촌 관계법령은 24건이며, 이외 사회복지사업법개정안, 약사법개정안 등도 기본적으로 농어촌과 관련 있는 법안들입니다. 22건에 달하는 정책보고서도 농어가 부채경감, 농어업관련 사업의 조세특례, 정책자금의 대손보전, 농어민의 경영회생제도 등 대부분이 농어업과 농어업민에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제가 강성의 이미지를 조금 가지고 있다고 주변의 지인들께서 충고를 해 주시고 있습니다만, 저는 조금이나마 농어업인의 어려움을 덜어드리고 좀 더 많은 지원과 혜택이 되도록 하는 원칙적 접근과 법률의 훼손이 없이 지켜내고자 했던 것 때문에 강성의 이미지가 보였던 것 같습니다. 제가 열린우리당 부대표로 있습니다만, 이는 우리 농어업에 대한 열린우리당의 의지이며, 저 또한 농어업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요구하고 지원되도록 할 생각입니다. 3. 65세 이상 노령화와 생계가 어려워 농어촌을 떠난 젊은이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정책대안 마련에 따른 이 의원의 견해는 무엇인가? - 참여정부의 농정목표가 돌아오는 농어촌, 살맛나는 농어촌 건설입니다. 지난 IMF의 영향으로 인하여 실업자가 늘어나고, 노숙자까지 양산되는 등 우리경제의 그늘이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도 지난 국민의 정부에서부터 시작한 귀농정책이 이제 일정정도 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다만, 귀농에 대한 구체적 계획없이 농촌에 정착했다가 또다시 탈농하는 사례가 많이 발생했습니다. 정부차원의 지원도 농림부의 119조 투융자 지원사업에 의해 개인별, 사업별로 무차별적으로 지원이 되었으나, 이제는 보다 구체적으로 확고한 영농의사와 영농교육, 그리고 귀농지원대책이 수립되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119조 투융자지원사업과 삶의 질 향상 특별법에 의해 농어촌에 정착하여 영농을 하는 경우, 지속적인 영농교육과 영농지도, 귀농인에 대한 관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귀농에 대한 보다 많은 지원과 지자체에 대한 관심이 제고될 수 있도록 제도적 방안을 마련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4. 전남 청산도와 노화넙도, 경남 욕지도와 사랑도 등 20여년간 끌어온 도서지역 주민 숙원사업인 농어촌전화촉진법 개정안을 발의하여 전국적으로 필요한 자금 428억원 문제를 산자부와 투쟁하여 초선의원으로 국회에서 개정하여 통과시켰는데 과거 5선의원과 장관까지 지낸 의원들도 해결하지 못한 법률안을 개정시켰는데 이에 대한 특별한 비결은 무엇인가? - 제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맨 처음 했던 일이 바로 농어촌전화촉진법을 개정하는 일이었습니다. 2004년 7월에 농어촌전화촉진법 중 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하였고, 당시 제가 열린우리당 제4정조위원장으로서 육지의 전기기본료보다 무려 10배나 더 부담하고 있는 불합리한 전기세를 반드시 바로잡아야겠다는 신념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20년이상 새로운 국회가 열릴 때마다 발의됐지만, 예산확보 문제로 인해 난항을 겪어왔던 법률안이 통과됨으로써 완도를 비롯하여 오지, 낙도 및 전국의 농어촌 소외지역 주민들의 전기료 부담을 크게 해소시켰습니다. 전국적으로 428억원을 경감시켰으며, 실제적으로 완도에는 원활한 전기공급을 위해 해저케이블 공사를 진행 중에 있어 제가 발의한 농어촌 전기공급촉진법에 의해 약800억에 달하는 혜택이 농어촌 주민들께 돌아갔다고 생각합니다. 법개정을 위해 산자부를 비롯한 관련부처와 간담회와 토론회 개최, 주민공청회, 현장방문 등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는 것을 말씀드리며, 어려울 때마다 힘을 주시고 용기를 북돋아주신 완도군민 여러분께 새삼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5. 초선의원으로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와 예산결산위원 및 열린우리당 원내부대표인 이 의원께 강진, 완도, 해남 지역민의 숙원사업인 광주-완도 고속도로 예산확보 및 사업추진에 대한 결과는 무엇인가? - 완도를 경유하는 국도로서 완도 ~ 광주 고속도로 건설이 가장 중차대한 기반공사라고 생각합니다. 완도~광주 고속도로는 이미 그 계획이 수립되어 내년부터 실시설계에 들어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완도~광주 고속도로 건설 사업과 함께 국도 77호선 남해안관광도로 확포장공사와 함께 국도 13호선 확포장 공사도 조속히 진행되어야 할 사업이라고 봅니다. 완도~광주 고속도로는 지난해인 ‘05년 6월부터 기본설계 착수에 들어갔으며, 내년 5월까지 완료될 예정입니다. 내년 예산으로는 실시설계비로 113억이 확보되어 지속적으로 건설사업이 추진될 것입니다. 보다 조속한 추진을 위해 87억을 이번 예결위에서 증액시켜 현재 예결위원회 계수소위에서 검토 중에 있습니다. 이번 완도~광주 고속도로가 완공되는 2012년이 되면 완도군의 물동량 및 관광객의 수요는 년1천만명이 넘어서는 관광완도, 물류완도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6. 최근 포럼활동을 많이 하고 있는데 지역구활동을 하면서 어려운 부분은 무엇이고 군민께 바라고 싶은 사항은 ? - 17대 의정활동을 시작하면서 제 스스로 수산어업인의 대변자를 자처하면서 어떤 일을 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였습니다. 타 산업에 비해 홀대받고 있는 수산양식업을 살맛나는 산업으로 만드는데 조그마한 도움이 되기 위해 하시라도 쉬지 않고 노력해야겠다라는 마음 하나로 시작하였습니다. 지난 3년간 앞만 보고 달려온 느낌입니다. 더불어 여러분의 사랑과 성원에 힘입어 올해도 270여개 시민단체가 모인 국정감사 NGO 모니터단이 선정한 2006년도 국정감사 우수의원에 3년연속 선정되는 영광을 받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여러분께서 헌신적으로 지원해주신 은혜입니다. 거듭 감사말씀을 드리며 변함없는 마음으로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하겠습니다. <김용환 편집인> 새감각 바른언론-완도청해진 www.wandonews.kr 입력:07,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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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광 완도군향우회 이인갑 회장 취임金容煥이 만난사람 -재광 완도군향우회 이인갑 회장 재광 완도군향우회 정기총회 제13대 이인갑 회장 취임 ▲ 이인갑 재광완도군향우회장 재광 완도군향우회는 16일(토) 오후5시 광주 메리어트웨딩홀 1층 별관에서 이영호 국회의원, 박광태 광주광역시 시장과 김종식 완도군수 등 700여명의 향우회원과 내외귀빈이 참석한 가운데 제24차 정기총회와 제13대 이인갑 회장 취임식을 가졌다. 1부 식전행사로 이영주 가야금 병창 예술단의 국악공연과 광주여성합창단의 완도의찬가, 완도출신가수 진주아의 공연을 시작으로 2부 이임 정래철 회장과 신임 이인갑 회장의 이,취임식은 향우회원들과 내빈들의 축하속에 성대하게 치러졌다. 이후 3부 송년의 밤으로 이어진 이번 재광 완도군향우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향우들의 많은 참여 속에 열기가 뜨거웠으며 “한마음으로 힘찬 미래를 열자”를 슬로건으로 출범하는 신임 이인갑회장과 새 집행부의 앞날에 거는 기대가 크다. 한편, 대다수 완도군민들은 재광 완도군향우회 이인갑 회장의 취임을 축하하며 완도지역 농,수산물 애용에 향우들이 각별한 관심을 가져 줄 것을 주문했다. <김용환 편집인> 새감각 바른언론-완도청해진www.wandonews.kr 입력:0612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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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 박업수 군의원- 전국기초의원 의정대상 수상▲ 박업수 군의원 金容煥이 만난사람 -완도군의회 박업수 의원 박업수 군의원 전국지역신문협회 선정 전국기초의원 의정대상 수상 박업수 전남 완도군의회 의원이 5일 사단법인 전국지역신문협회(회장 김용숙) 선정 전국 기초의원 의정대상에 뽑혔다. 5일 박업수 군의원은 이날 한국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사단법인 전국지역신문협회 창립 3주년 기념식에서 전국 기초의원 의정대상을 제5대 완도군의회 개원 관계로 대리인이 수상하여 약산면 발전협의회 회의석상에서 지역신문협회 광주전남협의회 회장(본지 발행인)이 전달했다. 이 상은 전국 300여개의 지역신문사로 구성된 사단법인 전국지역신문협회 중앙회가 매년 전국 기초의원 가운데 1명을 선정, 시상하고 있다.사단법인 전국지역신문협회 중앙회는 박의원이 전반기 군의회 의장을 역임하면서 지역민을 위한 조례제정에 앞장서는 등 활발한 의정활동으로 완도군이 관광객 3백만명, 관광소득 6백억원을 올리는 등 사계절 관광인프라를 구축하고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한 점을 선정배경으로 꼽았다. 박 의원은 "뜻밖의 상을 받게 돼 기쁘다"며 "군민들을 위해 관광산업과 해양전문사업 등을 추진하는 집행부와 함께하면서 열심히 일한 것이 외부로부터 나름대로 평가를 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김용환 대표기자>새감각 바른언론-완도청해진 www.wando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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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환이 만난사람- 한국고승(高僧) 백운스님김용환이 만난사람 한국고승(高僧) - 백운스님 <미륵사 주지> -사람다운 사람되려면 자신을 경책해야- ▲ 중앙 백운스님, 좌측 이승중씨. 우측 필자 청해진신문] 2005년11월5일 오후3시30분에 부산 동래구 금정산 정상에 위치한 미륵사의 주지로 계신 한국고승(高僧) 백운스님을 만났다. 범어사입구에서 1시간20분 산길의 돌밭을 거슬러 올라 천년고찰 미륵사를 찾은 필자 石泉은 1박을 하면서 백운스님의 수행한담을 들었다. 미륵암은 의상(義湘)대사가 당(唐)나라로부터 귀국한 670년(문무왕 10) 이후에 범어사를 창건한 해 지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삼국유사》의 기록과 같이 678년에 지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범어사를 창건한 해에 원효대사가 세운 절로 이 곳 한가운데 위치한 염화전 뒤편의 거대한 바위가 스님이 좌선하는 모양과 같다고 하여 '좌선바위'라 불리우고 있다. 이 좌선바위 뒤편에는 미륵불과 닮은 미륵불을 향해 좌선을 하고 있는 형상의 터에 원효는 기도도량을 세운 것이다. 미륵암이란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원효대사의 자취가 서린 미륵사는 미륵불과 독성불을 모신 첫손 꼽히는 기도도량으로 이름이 높다. 미륵사의 영험한 약수를 마시고 금정산의 봉우리들을 내려다보면 저절로 원효대사의 만물유심조(萬物有心造)처럼, "마음이 있으면 갖가지의 일이 생기고, 마음이 없으면 갖가지의 일도 저절로 없나니, 모든 일이 마음 갖기에 달려 있느니라" 그렇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오직 마음에 있거나 없을 뿐이다. 마음을 비우면 천하를 준다해도 티끌 하나만 못한 법이다. <편집자 주> ▲ 천년고찰 미륵사 ♦ 백운스님의 수행한담 -사람다운 사람되려면 자신을 경책해야- -콩 한쪽도 나누어 먹는 것이 불법실천- “부처란 바로 참사람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면 그속에 이미 행복이 들어있어요” 시대가 어지럽고 인간 본연의 모습을 점점 잃어가고 있으니 임제선사의 진인(眞人)사상이 그 어느 때보다 그립습니다. 나는 임제선사의 ‘참사람-眞人’사상을 가장 높이 우러르고 있으며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참사람이 되고자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처님을 일컬어 불(佛)이라고도 하고 크게 깨달았다고 해서 ‘대각(大覺)’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고 또 일체가 마음에서 이루어진다 해서 ‘심(心)’을 강조하고 또 본성을 찾아라 해서 ‘성(性)’이라고 하는 등 불, 심, 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임제스님에 와서 참사람, 진인이 이야기되기 시작했어요. 부처란 무엇이냐 하면 바로 참사람이다 이말입니다. 진실로 사람다운 것이 부처입니다. 사람다운 것을 떠나서 부처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죠. 불본주의, 심본주의, 각본주의를 뛰어넘어 인본주의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임제스님의 진인사상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 불교이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걸 일깨워 줍니다. 그리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 때 그속에는 이미 행복이 들어 있는 것이죠. 사람다운 사람으로 사는 길을 배워나가는 출가의 길을 내가 선택한 것이 아주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라고 늘 생각합니다. 출가는 단순히 세속에서 절집으로 들어오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번뇌의 굴레에서 벗어나서 자기 성품을 깨달아 참사람이 되는 것이 진정한 출가입니다. 나는 다섯 살 때 절에 들어와서 아홉 살까지 살다가 학교를 다니기 위해 다시 속가로 갔지요. 그때의 출가는 수행 정진을 위한 출가라기 보다는 단지 짧은 명을 연장해 보려고 하는 그런 출가였던 셈이지요. 그러나 그 인연이 이어진 것은 6·25 동란 때입니다. 6·25때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선친은 빨갱이들에게 학살당했고 나도 세 번이나 끌려가서 죽을 고비를 넘겼어요. 공산주의에서는 종교는 아편이라고 해서 금지했는데 그런 사상에 동의할 수가 없었지요. 나는 도망을 쳐서 산속 절에 들어가 숨어 있었습니다. 그때 나는 관세음보살님께 기도하며 약속을 했습니다. ‘이번에 살려주시면 출가해서 다시는 세속에 나가지 않겠습니다’고. 그 기도의 원력인지 나는 세 번이나 잡혔지만 그때마다 초등학교 동창이 살려준다거나 후배가 살려준다거나 해서 살아나게 되었지요. 그래서 관음보살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6·25전동란 끝나고 바로 출가했습니다. 처음에 백양사를 찾아갔습니다. 당시 조계종 종정이시던 만암 노스님이 계셨는데 어려서는 내가 백부라고 부르던 어른이셨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분의 제자가 되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만암스님께서 당신은 연세가 많고 해서 석산스님을 은사로 모시라고 하더군요. 그러나 내가 범어사 선방으로 공부를 하러 가게 되는 통에 석산스님을 모시고 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나중에 화엄사, 송광사, 범어사의 강사를 할수 있게 된 것은 석산스님의 가르침 덕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강사를 하면서도 내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찾아가 여쭙고 그랬으니까요. 나는 주로 만암노스님께 경전과 조사어록을 배웠는데 조사어록을 배우다 보니 선방에 가고 싶은 마음이 났습니다. 어려서는 팔만대장경만 다 알면 도인이 되는 줄 알았는데 조사어록을 보니 견성을 해야 한다고 되어 있더라구요. 그래서 그해 동안거를 범어사에서 났습니다. 그때 범어사 조실스님이 동산스님이셨는데 처음 뵈었을 때 내가 마음으로 늘 그려왔던 큰스님의 얼굴이었어요. 그래서 첫해부터 시봉을 한 삼년 했습니다. 동산스님은 네 상좌다, 내 상좌다 하는 권속 갈림이 전혀 없는 분이고 큰방에서 야단치시더라도 당신 방에 가시면 전혀 딴 얘기를 하실 정도로 뭐든 돌아서면 금방 잊어버리셨어요. 그리고 6·25때 그렇게 절살림이 어려워도 아무 차별 없이 오는대로 스님들을 다 받았어요. 원주스님이 사람 많이 받았다고 투덜거리면 “하늘은 녹없는 사람을 태어나게 하지 않았고 땅은 이름없는 풀을 기르지 않는다”라는 말씀을 늘상 하시곤 했어요. 즉 모든 사람은 자기 먹을 것은 다 짊어지고 다니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이셨죠. 오는대로 다 받아 들이다 보니 항상 쌀이 부족했어요. 국수나 수수, 강냉이 등을 배급받아 먹었는데 어떤 때는 국수를 사흘동안 먹고서 모두들 설사가 나서 고생하기도 했지요. 그래도 스님은 눈 한 번 찌푸린적 없고 찬이 없어도 불평 한번 하시는 것을 본 적이 없어요. 그만큼 검소하고 소탈하신 분이었지요. 그리고 공부에 있어서는 아주 확실한 가르침으로 방향을 잡아 이끌어 주시는 지혜를 갖추신 분이었습니다. 내가 참선을 하다가 공에 빠졌거든요. 아주 고요하고 고요할 뿐 아무 문제가 없고 편안한 겁니다. 그래 스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스님께서는 “그러면 안된다. 그럴 때일수록 화두를 잡아라”하시더군요. 그러나 공에 빠지면 너무 편안하고 시간도 잘 가기 때문에 화두가 잡혀지질 않아요. 스님은 나를 볼 때 마다 화두 잡았는지를 확인하지만 나는 계속 화두를 잡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렇게 몇날 며칠을 반복해서 나의 화두를 챙겨주시면서도 화도 안 내시고 자상하게 일러주시더군요. 그렇게 20일을 지냈어요. 그런데 하루 저녁 스님 시봉 마치고 들어와 잠깐 누웠는데 목침에서 떨어지면서 잠이 깨어 화두를 들었는데 화두가 들어지는 겁니다. ‘어째서 조주는 무라 했는가’하는 화두가 너무나 역력하게 잡히는 겁니다. 새벽3시에 노전스님이 도량송으로 천수경을 하시는데 전부다 ‘어째서 무라 했노’하고 들리는 겁니다. 그리고 개울물 소리도, 풍경소리도 그리고 전체가 ‘어째서 무라 했노’라는 소리로 들리더군요. 아침에 스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고개를 끄덕이시며 “너는 이제 공부 좀 하겠다” 하시더군요. 지금까지 그 은혜를 잊을수가 없어요. 만약에 내가 공에 빠져서 그 고요가 좋은 줄 알고 그 경지에 머물러 있었더라면 지금도 헛세월만 보내고 있었을 텐데 안목이 밝으시니까 바로 이끌어 주시더군요. 그만큼 공부에는 눈밝은 선지식의 가르침이 중요한 법입니다. 그리고 동산스님은 대중생활을 할 때도 몸소 실천해 보이신 분입니다. 아침 공양이 끝나면 제일 먼저 빗자루 들고 마당에 나가시니 다른 대중스님들이 안 나갈 수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어른이 앞장서니 질서가 잡히고 다 잘되기 마련이지요. 지리산 천은사위로 올라가면 상선암이라고 나옹스님이 계셨던 곳이 있는데 불교정화 이후 그곳에서 3년간 혼자 탁발해서 먹고 지냈습니다. 그렇게 공부를 하다가 아주 어려운 갈림길앞에 섰던 적도 있습니다. 내가 젊을 때 동국대학이나 불교대학을 다녀서 공부를 하면 포교도 하고 좋겠다 싶어 스님들이 학교를 많이 갔거든요. 해인사에서 세웠던 해인대학의 후신인 마산대학(현재 경남대학)에 종교학과가 있었어요. 그곳에 용성스님 상좌인 월주스님이 주임교수로 있어서 경상도의 젊은 스님들이 그 학교를 많이 갔어요. 현재 역경원장인 월운스님, 동국대 총장을 지내고 조계종 총무원장인 지관스님 등이 모두 동기예요. 그런데 그렇게 공부를 위해 학교를 갔던 이들이 속세로 많이 나갔어요. 그때 100명중 90명은 환속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예요. 나도 그때 대학원에 시험을 쳤는데 시험을 쳐놓고 보니 학교를 꼭 가야 하는가 회의가 생기더군요. 학교에 가서 세속으로 나가 교수가 되고 선생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면 중노릇을 그만두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내가 학교를 갔다가 만약에 세상으로 나가게 된다면 6·25때 관음보살님과 ‘다시는 세속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한 약속을 깨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학교에 가지 않기로 결정을 내렸죠.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스님된 것을 후회해 본적 없어요. 내생에 다시 태어나도 스님노릇 하고 싶어요. 생각해 보면 중노릇처럼 좋은 게 없어요. 무소유의 삶이 제일 마음 편하고 좋은 것입니다. 욕심은 한정 없는 것이니 그 욕심자체를 비우고 물욕에 물들지 않도록 조심하며 사는 것이죠. 이렇게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에 물들지 않는 마음으로 살기 위해서는 ‘수처작주(隨處作主)’라는 말을 새겨볼만 합니다. 수처작주는 어디든지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그곳에서 주인이 되라, 즉 주인공이 되라는 말입니다. <보살계경>에 보면 보살계를 받으면 지옥에 떨어지면 지옥의 왕이 되고 아귀계에 떨어지면 아귀의 왕이 되고 인간계에 떨어지면 인간의 왕이 된다는 말이 나옵니다. 보살계를 받으면 지옥에 떨어져서도 그곳의 주인이 된다는 말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그곳의 주인이 되는 마음 얼마나 멋진 경지입니까? 우리 모두는 현재의 자신을 냉정히 돌아보고 참사람이 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 미륵사 찾아가는 필자(石泉) 요즘 사람들은 오로지 남과 경쟁해 이기려고만 하고 뭐든지 많이 갖고자 아귀다툼을 벌입니다. 자신의 사리사욕만 채우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현재의 자신을 냉정히 돌아보고 참사람이 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참사람이 되어 모든 곳의 주인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 어려운 시대를 극복할 힘과 지혜가 생겨날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험해지고 어려워진다 해도 사람답게 살겠다는 정신을 버리면 안됩니다. 그렇게 될려면 굳은 신심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신심을 바탕으로 참선수행을 하여 자신의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비워야 한다. 비워야 한다 말은 하면서도 실지 왜 못비우느냐 하면 참선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참선을 한다는 말은 자기를 돌이켜 본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반성하고 자기가 자기를 성찰하는 것에서 자기의 허물을 벗어날 수가 있는 겁니다. 자신이 알게 모르게 짓는 잘못을 참선을 통해 깊이 성찰하면 그 잘못들은 저절로 없어지게 되죠. 자기를 돌아보는 사람이라야 자신의 잘못을 알고 바로 벗어날수가 있는 겁니다. 그리고 어려울수록 보살도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보살행은 나보다는 남을 위해 사는 삶을 말합니다. 이타자리, 즉 다른 이를 이롭게 하고 다른 이를 다 불도(佛道)에 들어오게 하겠다는 원력이 중요합니다. 그런 보살도를 행하려면 육바라밀을 실천해야 합니다. 육바라밀을 실천하면 자연히 보살도 정신은 실현되는 겁니다. 콩 한쪽도 나누어 먹던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바로 불법입니다. 이웃과 함께 어려움을 나누고 기쁨을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 그것이 바로 보살도인 것입니다. 그렇게 보살도의 정신으로 사람이 사람답게 살면서 부단히 정진하면 깨달음은 저절로 오게 마련이지요.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자기 잘못했다는 소리는 없고 모두들 책임을 남에게 돌려 버립니다. 이렇게 경제적인 어려움을 당하게 되어도 누구 한사람 책임감을 느끼고 내 잘못이다 하는 사람이 없잖아요. 큰 사건 날 때마다 책임질 사람이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서로가 내 탓이구나, 내가 잘못했구나 하고 자기 책임이라고 반성을 해야 향상이 될텐데 전혀 책임감이 없으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우리 종단의 분쟁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서로가 책임질 줄 알아야 합니다. 모든 것은 자기 자신에게서 출발합니다. 그것은 한치의 오차도 없는 진리입니다. <명심보감>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마음을 밝히는 보배로운 거울’이라는 뜻의 책이예요. 어려서 나도 <명심보감>을 배웠지만 그때는 그 깊은 뜻을 몰랐어요. 그 책 내용은 무슨 특별한 것이 아니라 전부 세상 사람들이 사는 얘기지 불교란 불(佛)자 한 자가 없어요. 그런데 끝에 가서 ‘바닷물이 마르면 마침내 바다 밑바닥을 보지만 사람은 죽어도 마음을 알지 못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왜 죽어도 마음을 모르느냐 말입니다. 그래요, 사람들은 자기를 모릅니다. 자기 마음을 모른다는 소리는 자기 자신을 모른다는 말과 같아요. 이 세상사람 전부는 자기를 모릅니다. 전부 남의 탓으로 생각하고 좋은 일은 자기가 했다고 하고 나쁜 일은 다 남이 했다고 해요. 옛 조사들은 법을 위해서 신명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요새는 법을 위해 신명을 바치는 이들보다는 자기 이권을 위해서 신명을 아끼지 않는 이들이 더 많은 것 같아 안타까워요. 한국고승(高僧) 백운스님은 우리 모두 이제 깨달음을 위해 신명을 바치는 참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불제자 모두는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경책해 나갑시다” 고 당부했다. ♦백운스님(미륵사) ㆍ법명 : 백운 ㆍ직함 : 주지 *약력 1934년 전남生 53년 동산스님을 은사로 비구계 수지 60~82년 영동 중화사, 포항 오어사, 경기 영월암, 김해 장유암 주지 역임·범어사 지리산 토굴 등지에서 정진 ·71~87년 화엄사, 범어사, 송광사 강사, 87년말~90년2월 완도신흥사 현재 부산 미륵사에 주석 ·<양치는 성자><진묵대사><부설거사><오세동자의 오도> 등 소설 다수 <인터뷰:2005년11월5일 石泉 김 용 환> 새감각 바른언론-청해진신문 www.wando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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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여는 노익장- 정두실씨김용환이 만난사람 전남 완도군 완도읍 장좌리 정두실씨 새벽을 여는 노익장 생생한 정치사회, 스포츠 뉴스를 청해진 완도에 배달하다 윤전기를 빠져나온 일간지 신문이 청해진완도! 이곳에 도착하는 시간은 보통 새벽2시30분경. 광고 전단 등을 끼워 넣는 간지 작업을 하고 나면 새벽3시부터 노익장 정두실(67세, 전남 완도군 완도읍 장좌리)씨의 본격적인 배달이 시작된다. 16년간 청해진 완도의 새벽을 여는 노익장 정두실씨를 18일 청해진완도항 1부두 포구에서 만나보았다. 그는 장보고대사의 고향인 청해진 장좌리 태생으로 청해초등학교와 완도중학교를 졸업하고 광주상업고등학교를 마치고 고향마을에서 변함없이 농사를 일구고 있었다. 정씨는 지병인 당뇨 때문에 해남종합병원에서 1개월간 입원치료를 받고 계단을 힘들게 오르는 불편한 몸으로 지난 1990년부터 무등일보 완도지사에서 처음 신문배달을 시작했다는 것. 매일 새벽2시에 불편한 몸으로 모터사이클을 타고 장좌리에서 완도읍 신문사까지 약8km구간을 비가오나 눈이오나 16년간을 변함없이 출퇴근을 하고 있었다. 광주전남지역의 무등일보와 광주매일의 격동기로 폐간을 거쳐 세계일보 완도지국을 맡아 신문배달을 하고 있는 정두실씨는 동아일보, 조선일보, 스포츠신문의 일부 시내구역을 배달해주고 난 후 자신의 세계일보를 완도읍내 지역과 농공단지, 경찰서 등에 신문배달을 마친 오전7시30분경에 집에 도착하면 아침밥 한 공기를 거뜬히 비운다는 것. 아침식사를 마치고 논농사 1,000평과 밭농사1,200평을 임대한 농토에 나가 혼자 농사를 짓고 있다. 지난16년간 새벽을 열며 신문배달을 하는 노익장에게 받아본 뉴스에 반가운 소식을 보는 독자들과 함께 자신의 건강을 되찾아 가고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행복한 정두실씨.<사진> 그러나 기관지통증과 무릎관절로 수술을 해야하는 부인 강이단여사(65세)는 딸 넷을 출가 시키고 장애로 인한 고통으로 집안일과 농사일을 거들어 줄 수 없으므로 혼자 모든 일을 해결해야하는 정씨지만 항상 밝은 모습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있다. 나이 65세이면 정부에서 인정하는 노인으로 대부분 노인어르신들은 노인당에서 소일하고 있다. 그럼에도 67세의 노익장인 정두실씨는 지병인 당뇨를 극복하고 오늘도 새벽2시면 일어나 모터사이클을 타고 장보고의 고향 장좌리 마을에서 완도읍에 신문배달을 위해 새벽을 여는 일에 변함이 없다. 같은 마을에 사는 형은 마을이장과 향교사무국장을 지낸 정유균(70세)씨로 형제간에 우애가 깊으며 장좌리 마을발전에 많은 공헌을 했다는 주민들의 여론이다.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신문배달을 계속하겠다는 정씨는 새벽운동을 나온 공무원 정년퇴직을 한 친구들을 가끔 만날 때 마다 “정년이 없는 신문배달부 친구가 부럽네”하는 소릴 듣는다는, 그는 내가 노익장이라 일하지 않고 있었다면 지병인 당뇨 때문에 투석하러 병원에 다니는 신세가 되었을 게 뻔하다며 운동삼아 건강을 위해 새벽을 여는 신문배달부가 좋다고 말했다. 신문배달 정선생께 박수를 보내며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콩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난다는 농부의 진실을 보는 것처럼 성실하게 살아가는 정두실 선생에게 우리 모두 겸손히 진실을 배워야 할 것이다. 필자인 石泉은 는 광주매일 완도군출입기자 시절에 수년간 정선생과 함께 일을 하며 지켜보았지만 매일 새벽을 여는 변함없는 노익장으로 자신의 책임을 끝까지 완수하는 분이었다. 정두실선생의 허락이 없는 사실, 한 가지를 말함에 양해하여 주실 줄 믿으며 적는다. 광주매일에 함께 일하면서 둘째인 장애인 아들이 하늘나라로 갔을 때도 한 오일 간 쉬시라고 해도 변함없이 새벽을 열며 신문배달을 마치고 장례를 치르는 그 모습을 보고 필자는 감명을 받았다. 다른 사람이 대신하면 한집이라도 신문을 빠뜨릴 수 있기에 매일 뉴스를 기다리는 독자를 위해 가정의 대소사에도 작은일 이지만 맡은바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정두실 선생의 변함없는 성실함이야말로 우리 사회에 인성교육이 메마르며 불법도 자기주장만 최고라는 부류의 많은 사람들이 반성해야 할 것이다. 오늘도 변함없이 새벽을 열며 모터사이클을 타고 집집마다 방문 배달하고 새벽 2시 30분에서 7시면 동아일보, 조선일보, 스포츠신문, 세계일보 등 조간신문이 정 선생에 의해 독자들의 손에 쥐어진다. 필자인 石泉역시 광주매일에서 청해진신문 발행인(편집인)으로 옮겨 6년여 캄캄한 새벽길을 달려 신문을 배달하면서도 신이 났다. 늦었지만 50대의 건강을 위해 발행인이 직접 신문배달도 해야 배달원의 고충과 새벽공기의 신선함을 알 수 있다는 정두실 선생의 충고덕분에 무언가 희망이 보인다는 생각을 하면 신바람이 저절로 났다. 한 주일에 한 번씩 발행하는 청해진신문 주간지를 해남지사와 강진지사에 보내고 서울, 부산, 광주 향우들과 12개읍면 독자에게 우체국에서 우편발송을 하고 난 후 나머지를 완도읍내에 5,000여부를 배달하고 있다. 인생에 있어서 학교가 몇 년 빠르고 늦고는 대단한 문제가 아니지 않느냐고 스스로 다짐했다. 필자인 石泉은 67세 노익장 정두실선생의 새벽을 여는 변함없는 성실함을 배우며 항상 마음속에 깊이 새기며 오늘도 존경하고 싶다. 신문배달을 하는 정두실 선생의 모습은 내 모습이었다. 내 인생의 구비 구비에 신문배달을 했던 경험이 큰 힘이 되었던 것처럼, 힘든 생활을 살아가면서 신문배달 경험이 정 선생에게도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다. 특히, 완도읍에서 제일다방을 경영하는 여주인은 매년명절 때 마다 선물을 주고 최근에는 내의 한 벌을 사주며 건강하게 신문배달을 하시라고 격려해주니 더욱 힘이 솟는다는 정 선생은 보람에 산다며 지난16년간 매년 명절에 빠짐없이 신문배달원에게 선물을 주고 격려하는 완도군에도 지면을 통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사람은 잃을 게 없다. 밑질게 없는 신문배달을 하겠다고 결심하고 지난 16년간을 정두실 선생은 벌써 그것을 통달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쑥스럽지만 머지않아 지병인 당뇨로부터 건강을 완전히 되찾고 모자를 바로 쓰고 큰 소리로 '신문배달이 내 건강이요'를 할 수 있게 되리라 믿는다. 얻을 것만 남아있는, 밝고 푸른 내일을 생각하며,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67세 노익장 신문배달원 정두실 선생께 건강의 섬 완도에서 뜨거운 성원의 박수를 보낸다. <발행인 石泉 김용환> 0510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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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규-전남서부어류양식수협 조합장金容煥이 만난사람 - 김 명 규- 전남서부어류양식수협 조합장 완도산 활어유통 협약사업 청신호 ▶산지에서는 출하 실명제 ▶소비지에서는 유통 확인제 ▲ 김명규 - 전남서부어류양식수협 조합장 전남서부어류양식수협(조합장 김명규)은 지난 3월초부터 해양수산부 산하 해양수산개발원과 합동으로 각 읍면을 순회하며 완도산 활어 유통사업의 방향을 제시하는 설명회를 가지는 등 본격적으로 완도산 활어유통 협약사업에 나섰다.김명규 조합장은 침체된 경기를 극복하는 일원으로 활어회의 소비촉진과 직거래 유통망 등의 유통방법 개선으로 어업인 소득증대를 위해 TV홍보와 지역별 이벤트사업이 아주 중요하다고 말했다.그는 완도군과 함께 광어회 홍보를 위해 불목리의 해신세트장에 주말장터를 개설하고 서울 종암동 공동어시장에서 완도산 광어 무료시식회 및 수산물 대축제(지난3,30-4,3)를 개최하는 등 광어 소비촉진 홍보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이에 자체 유통사업을 해양수산부의 유통협약사업과 연계하여 생산자(양식어업인), 유통인, 소비지, 유관기관 단체의 대표로 구성된 완도군넙치(광어) 유통조절 추진위원회를 지난4월21일 구성하여 회장에 이정시 씨를 선출하고 도상연습의 5월시행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다.산지인 각 양식장에서는 출하증명서를 발행하고 소비지에서는 완도산 활어의 유통경로를 확인하는 단속반을 지속적으로 운영하는 유통확인제를 실시키로 하였다.유통확인제가 시행되면 산지에서는 비 상품어의 출하규제 및 약품사용의 규정준수, 홍수출하의 조절등이 이루어지고 소비지에서는 수입산과 타지산이 완도산으로 둔갑되는 것을 막고 허위 완도산 간판사용 등을 철저히 단속하는 한편, 언론매체를 통해 대대적인 홍보로 완도산 활어의 대국민 신뢰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여진다.한편, 전남서부어류양식수협 김명규 조합장은 정부에서 추진중인 수산물 생산 이력 시스템도입 사업과 맥을 함께하여 이를 발전시켜 나가면 지역경제 활성화와 우리 수산물의 대외경쟁력 강화에 큰 효과를 나타낼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 사업의 성공여부는 양식업계의 자율적인 참여와 장기적인 민관의 협조와 지원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김용환 대표기자> 새감각 바른언론-완도청해진 www.wando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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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농협을 찾아 - 김강채 청산농협조합장金容煥이 만난사람 -김강채 청산농협조합장 복지농협을 찾아 청산농업협동조합 김 강 채 조합장 ▲ 청산농협카훼리2호 취항 "해신 드라마촬영지와 서편제 영화촬영지 연계로 관광 활성화" 서편제영화 촬영지로 유명해 영화마을로 지정되고 최근 "봄의 왈츠 드라마촬영 예정지"로 알려져 관광객이을 대상으로 관광사업 소득증대에 청산농협 김강채 조합장 이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청산농협은 지난11일 정하택 완도부군수, 김석균 완도해양경찰서장, 전병덕 농협중앙회 완도군지부장 등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청산면 도청항에서 300톤급 대형 관광여객선을 건조하여 "청산고속 카훼리2호 취항식"을 가져 교통난을 해소했다. 청산농협 조합장을 비롯 21명의 직원과 이사 및 조합원들은 총회를 거쳐 청산도 교통난 해소를 위해 완도군에 관광유람선 사업을 신청하여 수지타산 문제로 사업진척이 늦어 한때 사업이 중단되기도 하였다. 이에, 전라남도 관광협회 김용환 이사(본지 발행인)의 해상관광 사업계획 자문으로 선상결혼식, 선상국악공연, 선상회갑연 등의 특수행사를 유치하여 사업소득을 높이고 관광객의 다양한 욕구 충족을 위한 이벤트행사를 유치토록 관광사업의 범위에 추가하여 관광유람선을 차량을 적재하는 카훼리형 관광여객선으로 변경하는 사업계획(안)을 제출하여 완도군과 전라남도의 적극적인 협조로 변경승인을 받게되었다는 것. 300톤급 신조선 청산고속 카훼리2호 관광여객선은 도비4억여원과 군비1억여원을 보조받았으며, 농협중앙회 저리자금 11억7천6백만원을 지원받아 건조하여 청산지역 해상교통난 해소와 함께 해양 관광사업의 활성화로 침체된 지역경제를 회생시키는 전기를 마련했다. 이날, 취항식에서 김강채 청산농협 조합장은 희망찬 농어촌 건설을 위해 노력하는 김종식 완도군수의 적극적인 지원과 이영호 국회의원, 박준영 전남지사 및 천익민 군의회 의장을 비롯 전체 군의원들의 각별한 협조로 300톤급 청산고속 카훼리2호를 새로 건조하여 취항하게 되었다며 전체 조합원들과 함께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한다고 말했다. 한편, 청산농협은 4월중에 지난1월21일 제41기 정기총회에서 청산초등학교 19명 졸업생에게 95만원, 청산중학교 25명 졸업생에게 25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하고 2월4일 신년교례회를 개최하여 각 영농회 노인회관에 보일러 유류구입권 1드럼(200L) X 29매 및 운송비 부담권 29매(총5백6십9만3천원)를 농협 환원사업으로 지원하는 등 농어촌 어른들과 학생들에게 농민들의 따뜻한 마음을 전하여 격려하는 등 복지농협 구현에 앞장서고 있었다.<김용환 대표기자> 새감각 바른언론-완도청해진 www.wando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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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창 국 소안수협 상임이사金容煥이 만난사람 -김 창 국 소안수협 상임이사 조합원 위해 봉사하는 임직원 되겠다. ▲ 김창국-소안수협이사 소안수협 제14기 정기 대의원회에서 실시한 비조합원(상임)이사 선출에서 당선된 김창국(57)씨는 지난1997년 수협중앙회에 입사하여 26년동안 수협중앙회에 근무한 수산인이다. 열악한 조건의 소안수협을 선진수협으로 도약시키며 조합원을 위한 봉사하는 임직원들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당선소감을 밝혔다. 김창국이사는 수협중앙회 요직을 거친 26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김광선 조합장과 함께 누구보다도 수산을 잘알고, 지역수산업의 활로가 무엇인지 알기에 이제 실천해야 할 때라며 선진수협을 만들어가는 초석이 되는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지난1968년 조선대부고를 졸업하고 1977년 수협중앙회에 입사하여 목포, 여수공판장, 광주지점, 영업부, 무역부, 전남도지부, 종각지점 대출과장, 광주지점, 전남도지회 관리과장, 마지막으로 2002년4월까지 길동지점장(둔촌동지점장 겸직)을 역임했다.<김용환 대표기자>새감각 바른언론-완도청해진 www.wandonews.kr입력0503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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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일하는 여성]화림회 사범 윤혜경 씨金容煥이 만난사람 - 한국 꽃 문화 진흥협회 화림회 사범 윤혜경 씨 ▲ 윤혜경-화림회 윤혜경 플라워 디자인 교실을 운영하는 윤혜경 사범을 "새해 일하는 여성" 취재를 위해 군 청년회관에서 만나보았다.현재 완도군청년회관 2층 JCI특우회 사무실에서 여성들을 대상으로 매주 화,수,금요일에 꽃꽂이교실을 운영하는 윤 사범은 테이블용 꽃다발형 수반, 숯 공예, 어버이날 꽃바구니와 가슴꽃, 서양꽃꽃이 분리형 수반, 벽걸이 공간 디스플레이, 콘의 변형(성탄용), 리스만들기, 테이블용 유리그릇속의 꽃, 원형 꽃다발, 직립형 동양 꽃꽂이 등을 수업 시 강의하고 있다.출장강의도 해주는 윤 사범은 각교회 성전꽃꽃이, 각기관 행사꽃 장식, 결혼식 꽃꽂이 장식으로 웨딩 부케, 웨딩카 등에 실비를 받고 봉사를 해주기도 하여 칭송을 받고 있다.윤혜경 사범은 전,완도JCI 정을래회장의 부인으로 독일 그렌백 하계학교수료, 해외교류 및 독일 그렌백학교 워크샵 참가(러시아,독일,한국), 2003년 한국 꽃 문화진흥협회 정기총회 전시회출전, 완도 등대지기주최 6개월코스 강사, 현재 완도천주교회 꽃꽂이담당과 군 청년회관에서 꽃꽂이교실을 운영하는 봉사를 하고 있다. 취미생활이 부족한 지역에서 여성들을 위해 꽃꽂이 교실로 봉사하는것이 즐겁다는 윤혜경 사범의 아름다운 모습은 청해진의 꽃 문화를 개척한다는 희망으로 주민들에게 정착해가고 있다.<김용환 대표기자> 새감각 바른언론-완도청해진 www.wandonews.kr